서른 즈음에..

저는 올해 나이가 서른이 된 직딩입니다. 나무로 치자면, 나이테를 세 번 정도 두른 혈기왕성한 시기라고나 할까요? 동갑내기 친구녀석은 드뎌 ‘계란 한판을 채웠다’라는 표현을 쓰며, 작년 연말에 함께 자축하기도 했는데, 저는 사실 좀 심란했습니다.


‘서른’이 뭐 대수길래 저 혼자만 이런 궁상을 떠는지 모르겠습니다. 더욱이 십대와 이십대 때는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으니 말입니다. 남들은 계절을 탄다지만, 저는 이러다가 십년에 한번씩 나이를 타는 게 아닐까 싶군요^^ 


뭐, 대충 고민은 이렇습니다.

‘뭘 먹고 살지’

‘난 행복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난 잘하고 있는 건가’


이젠 이십 대가 아니라는 막연한 아쉬움 속에, 떠나 보내기가 싫어 자책을 좀 했던 것 같내요. 이제 30대를 새롭게 시작하는 마당에, 잘해낼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두려움과 함께 말입니다. (남들은 그냥 넘어갈 상징적인 숫자에 불과하거늘, 제겐 암턴 좀 유별났습니다.)


십년이 지나고..

스물 한 살, 선배들이 장미꽃 한 송이를 줬던 성년식이 기억납니다. 솔직히 ‘이제 나도 어른이 되었다’라는 기쁨보단 당시 선배들이 사주는 술이 더 달콤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어차피 어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혜택을 누려왔기에, 성년식이 되었다고 제겐 특별히 달라질 건 없었으니깐요^^


물론, 유흥에 정신이 빠져 어른행세를 하느라 탄알(돈)이 떨어질 때면, 다시금 어른에서 능력없는 철부지 아들로 변하곤 했습니다. 용돈을 받아 생활하던 저에겐, 그 순간만큼은 조금 비굴(?)한 자세로 부모님께 연락을 했습니다. 딱 이럴 경우엔, 제가 아직 독립을 하지 못한 이름뿐인 바지어른이라는 것을 처참히 느끼곤 했습죠.


이십대 = 성년이 되기 위한 혹독한 시험대~

서른 살이 되기 까지, 10년이란 세월은 냉탕과 온탕을 너무 자주 번갈아가며 지내온 질풍노도의 시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건, 사고가 머릿 속을 스치는 가운데, 저의 이십대는 한마디로 ‘어른이 되기 위한 마지막 성장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을 되씹어보면, 지금은 제가 진정한 어른이 되었다는 뜻이겠죠. (물론 저희 어머니는 아직도 멀었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중요한..그리고 질풍노도의 시기이기도 한 이십대의 청춘은 한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너무~너무~ 중요한 때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아실 것입니다. 엊그제 수리부엉이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잠시 보았습니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면서..그러나 다 자란 새끼들이 어미품을 떠나게되는 그 순간.. 어미는 도움을 바라는 간절한 새끼의 외침에도 매몰차게 외면하더군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이제는 새끼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야 한다는 것은 동물의 본능에서도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세속세계에서의 이십대라는 의미도 위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나가야 할 적기라는 생각과 함께, 시행착오를 통해 독립된 자아로서 성장하는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Go~Go~ Mountian!’

그냥 콩글리쉬입니다. '인생은 산넘어 산'이라는 뜻인데요. 제게 십대 때 자주 들려주시던 말씀이었습니다. 솔직히 당시로서는 대입이라는 한가지 목표만을 위해 달려갔었기에, 그냥 대학생만 되면 모든 게 끝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잔소리처럼 들렸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살면 살수록, 때때로 실패의 두려움을 알게 되었을 때, 어머니의 당시의 말씀은 상당한 용기가 되었으며, 지금도 늘 가슴 속에 새겨듣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이제 겨우 서른이거늘 마치 인생을 다 산 것마냥, 제가 왜 감놔라 배놔라하는 한량이 되어 잔소리를 늘어놓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십대라는 그 시기는, 스스로 생각컨데 인생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시기였고, 후회가 되는 부분도 많았고, 다시금 되돌리더라도 그 시기만큼의 황금기는 없었을 것이라는 막연한 30대의 두려움이 앞서다보니 길어졌던 것 같습니다^^


한번 자면, 누가 엎어가도 모르던 녀석이 작은 인기척에도 깰 정도로 민감해졌고, 무조건 큰게 좋다는 촌놈이 요즘들어 아기자기한게 이뻐보이고, 이십대때는 절대 안입던 정장바지를 지금은 즐겹입게 된 저의 모습.. 그리고 저를 쭉 보고자란 제 여동생도 30년 평생 완전동안이라고 생각하며 살아 온 제 얼굴을 보고 '오빠도 늙는구나'라고 했을 때, 펄쩍 뛰지않고 인정하던 지금이 이젠 그때와 다른 또다른 저의 모습임을 인정하려 합니다.


지난 새벽녘에 내리던 가을비의 조근조근한 소리가 잠이 깼던 기억이 납니다. 잠시나마 창문을 열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어찌나 그 소리가 행복하고 아름답던지요.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왜 지금까지 이런 자연의 아름다움을 몰랐었을까? 앞만보고 달려왔고, 나와 연관이 없던 모든 주위의 사물에는 무관심하게 살아왔던 20대의 삶이 조금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젠 나도 이런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때가 되었어'라며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며 다시금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앞으로의 십년..아마도 또 다른 인생의 중요한 시점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40대를 맞이하는 제 모습이 벌써부터 어떻게 변해있을지 사뭇 궁금해지는군요.


김광석님의 ★서른즈음에★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 뿜은 담배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속엔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있구나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간다
머물어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있구나

Posted by 언어의 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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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대로 스토리텔링하는 공간>블로그 이름이 시니컬하죠^^ 왜 젓깔이냐 굽쇼? 비린내나는 젓깔이 내포하는 풍자적 뉘앙스(조까)를 토대로, 1人 대안세력으로서 사회적 담론을 함께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자~ 그럼, 젓깔닷컴이 푹~삭힌 진득한 이야기 속으로 빠져 보실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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