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와이프가 출장을 가느라,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일찍 눈을 떴습니다. 행여나, 뱅기 시간에 늦을까봐, 저희 부부는 바삐 움직였죠.

'나도 투표나 하고 갈까'
와이프가 뜬금없는 질문에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이유인즉슨, 와이프의 정치적 성향은 저와는 완전 다른 '오른쪽'이기 때문에, 그녀가 없는 게 낫다는 순간적 판단 속에, 출장 길을 제촉하기 시작했습죠.

새벽 6시쯤..
덕분에, 와이프를 공항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주고, 저는 맘편히 집근처 초등학교에 설치되어 있는 투표장을 찾게 되었습니다.

평소에는 느그적 느그적 일어나 오후쯤에야 투표장을 방문하곤 했었는데, 아침 일찍 오게 되니 참 감회가 새롭더군요^^
투표장의 길게 늘어선 줄

투표장의 길게 늘어선 줄

투표장을 점렴한 어르신들^^
역시나 대다수의 중,장년 층 어르신들이 일찌감치 투표장에 오셨더군요. 주로 오후에 방문했던 저로서는, 새벽녁부터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서는 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허나, 저와 같은 젊은 세대들은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워낙에 이른 시간일 뿐더러, 이것이 어쩌면 정치에 무관심할수 밖에 없는 '80만원 세대'의 현실이 아닐까하는 씁쓸한 생각이 교차하더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의 한 표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투표율에 따른 판세가 좌지우지 되는 지역에서의 젊은 층의 투표율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사료됩니다.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세대별로 고른 투표율이야 말로, 이번 지방선거에서 참된 일꾼을 뽑는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겠죠.


북풍에 밀린 후보들의 검증기간..

'천암함 사태'에 모든 이슈가 쟁점화되지도 못한 채, 우리는 6/2 동시 지방선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국가안보를 내건 보수층의 결집효과는 분명 이번 선거에서 엄청난 효과를 발휘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 비교가 의미없지만, 젊은층이 배제된 채, 중/장년층의 투표율에 의해 당락이 결정되게 된다면 선거 결과는 굳이 논할 가치가 없는 'OOO당의 일방적 승리'로 끝날 것입니다.

얼른 일어 나셔서, 집 근처 투표장에 꼭 다녀오세요!
요즘 대딩의 경우, 시험기간이라고 하더군요. 많이 힘드시겠지만, 잠깐 짬내어 '1人'의 풀뿌리 민주주의 힘을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투표 용지만 2장일 뿐!
더욱이, 이번 투표방식이 예전과 다르게 상당히 복잡해졌다고 하길래, 우려하던 바가 있었지만, 생각보다 쉬웠습니다. 그냥 줄서서 첫번째 용지에 투표권을 행사하시고, 바로 나눠주는 두번째 용지에 맞춰서 자신의 성향에 맞는 분을 찍고 나오면 됩니다.

그리고! 이 것만은~ 꼭!!
저도 솔직히 교육감까지는 어느 분을 찍을지 염두해두고 나섰지만, '교육의원'은 정말 누가누군지를 모르겠더군요. 더욱이, 정치적 성향을 배제한다는 취지에서 특정 정당이 기재되어 있지않았기에, 솔직히 랜덤으로 찍고 나왔습니다ㅡㅡ

이러면 안되지만,
저도 한번만이라도, 교육의원 후보들에 대한 포스터라도 참고하고 갈껄~ 이라는 후회가 들더라구요^^ 여러분들은, 이런 착오가 없으시기를 바라며, 투표장에서 최소한 교육의원 후보들의 성향만이라도 체크하고 투표하는 센스를 발휘하십시오!

대한민국의 안위와 전혀 상관없는 1人의 청년에 불과하지만,
저의 소중한 의견을 통해 2030세대 여러분들의 전향적인 투표의지가 불타오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몇 자 적고 갑니다! 2010/06/02

그럼, 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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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30대 초반(79년 생)의 앞날이 창창한 청년이다.

혈기왕성할 뿐더러, 아직도 나의 신체상태와 생활리듬은 20대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엊그제 발표된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든 노장 선수들을 보며 마음이 심숭생숭하다.

언론에서 논하기를,
이운재, 안정환, 이동국등을 이른 바 경험많은 노장선수로서, 신/구간의 조화를 통해 조커 역할을 수행 할 것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이동국이 나와 동갑임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노장선수 취급을 받는다는 게 그냥 언짢았다ㅡㅡ

이제 꽃을 피는 나이인데,
노장이라니! 그럼, 선수로서의 생명도 이제 얼마 안남았다는 건데, 언론에서 아무잣대없이 나이로 매장하는 게,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자기관리가 철저한 선수들은 40대까지도 프로에서 현역으로 남는 경우도 있다)
 
하긴, 30대를 넘어서면
프로 스포츠 세계에서는 일찌감치 노장으로 분류되어, 은퇴를 준비하는 게 예사로운 일은 아니었다. 헌데, 30대에 접어들었다고 해서, 신체상태는 20대였을 때와 별반 차이가 없을 뿐인데, 이러한 분류 잣대가 내심 못마땅했었나 보다.(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내가 젊었을 때는,
그냥 지나쳤던 프로선수들의 은퇴 소식이, 이젠 동병상련의 심정이 되어서인지, 그러한 이슈가 달갑게 느껴지지 않는 것만은 사실이다. 더 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프로야구/프로농구의 프랜차이즈 스타들이 프론트의 압력 등으로 쓸쓸히 물러서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본인 또한,
겉으로는 후배선수들을 위해 대승적인 차원에서 은퇴를 한다고는 하지만, 이는 변명일 뿐이다. 그러한 아쉬움 때문인지, 은퇴 회견장에서 보이는 눈물은 그저 서글프기만 하다. 물론, 코치 연수나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되면서, 다시금 경기장에서 모습을 보이긴 하겠지만, 그들에겐 '지도자'라는 수식어보다, '선수'로서의 자신을 더 사랑했을 것이다.

눈주름이 가득한 나의 현재 상태^^(진짜, 늙긴 늙었구나)

아무쪼록,
내 나잇대가 노장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다는 사실에, 잠시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게 사실이다. '이제, 나도 노장취급을 받는 나잇대구나'라는 것이 어찌나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던지, 순식간에 자괴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중년의 삶인데, 사회에서 '나이'라는 일률적인 잣대로 분리한다는 게, 못마땅해서 몇 자 적었다. 요즘, '안티에이징'이라는 말이 유행하듯, '늙어간다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는 않지만, 기왕이면, '젊음을 유지한다는 것'으로의 사회적 인식을 어느정도 반영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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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2월 31일
새천년을 맞이하는 밀레니엄 시대에,
온 국민은 환희와 기대감으로 벅차 있었다.

한 세기를 넘어,
천년의 시간을 뛰어 넘어가는 그 순간..

새로운 시대로의 도약을 염원하며, 
모두가 덩달아 신나했던 그 당시를.. 잠시 회고한다.

난 아마도,
그 소중한 순간을 군대에서 맞이하게 되었다지ㅠㅠ

1999년 12월 31일 보신각

새천년을 맞이한다는 1999년의 마지막 밤.. 이날 우린 보신각 앞에서 혼잡경비를 섰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한명의 시민이 종각역에서 압사를 당했다고 나는 기억하고 있다.

내가 기억하는 1999년..
누군가 난세 속에 영웅이 나타난다고 했었지. 허나, 1999년의 12월에는 '밀레니엄 시대로의 도약'보다는 유독 종말론을 외치며, '인류의 위기'를 외치며 국민혼란을 부추기는 종교계의 이단아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기도 했다.

그렇게 12월의 마지막밤이 오고..
난, 군복무 중에 있었다. 수도 서울의 치안을 위해, 나라를 충성하며 시위대와 힘겹게 싸우던 그 당시.. 우리 부대는 당시 밀레니엄 시대를 알리는 <보신각 타종행사>에서 혼잡경비를 맞게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새천년의 희망을 바라보는 그 현장에서, 나 또한 함께 할 수 있음을 기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분대장을 단지 얼마 안되어 소대내에서 짬밥이 좀 되던 나로서는, 혼잡경비를 맞았다기 보다는 시민과 함께 축제를 즐겼다는 것이 아마도 딱 어울리는 표현일 것이다.

종각부터 대학로까지..
9시 광화문 혼잡경비, 12시 종각 타종행사, 새벽 2시 대학로 마로니에 광장의 콘서트 현장까지, 쉴새없이 뛰어다녔지만 그날만큼은 우리 또한 마음이 들뜬 채로,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며 현장을 즐겼었다.(물론, 그날 안타깝께도 종각역에서는 넘쳐나는 인파 속에, 시민 1명이 압사를 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기도 했다.)

'치열하게 20대를 살아보자'

그렇게 나는..
생생한 보신각의 타종 소리를 들으며, 다가 올 십년의 인생에 대한 새로운 다짐을 할 수 있었다.

2009년 12월.. 어느날, 어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눈만 깜짝하면 십년이란 세월이 금방 지나가는 구나.. 벌써 2009년 12월이라니.. 그렇고보니 그 십년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내.. 너가 군대도 다녀오고, 학교 졸업하고, 취업까지 했으니 말이다.. 할아버지/할머니도 돌아가셨고 이제 너까지 결혼한 마당에, 엄마도 60대를 바라보게 되었내.. 옛 어른들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는 것 같아..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세월이 이렇게 빠르구나..

어머니의 말씀이 끝난 뒤로도, 난 그 말씀을 계속해서 곱씹으며 생각했다.
맞다.. 내가 1999년에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다짐을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정말 십년이란 시간이 흘러, 2009년이 되었구나..

십년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십년을 계획하자!
난 정말 당시의 다짐과 같이 치열하게 살아왔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스'다. 나의 이십대는 그 누구보다도 후회없이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지나간 과거, 지금에서 후회해봤자~ 또,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젠, 앞으로의 십년에 대해 난 진지한 성찰과 함께 다짐을 하고자 몇 자 남긴다.
<관련글 보기>2007/12/21 - [20대의 끝자락] - 나의 이십대를 말한다!

2010년! 호랑이가 아닌, 거북이가 달린다!
그렇다. 경인년의 해에, 난 호랑이가 아닌 거북이가 되기로 결심했다. 더 솔직하게 20대의 인생을 동물로 비유하자면, 난 토끼가 앞만보고 달리듯 살아왔다. 뒤도 돌아볼 겨를없이, 소중한 20대를 다 보낸후에야, 비로소 내가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나를 위해, 거북이가 되련다.
겉치레만 신경쓰던 20대였다. 속빈강정마냥, 주변의 시선만 의식하던 나였다. 정작, 자신에 대한 확신은 없었으면서도, 그렇게 다른 사람이 좋다면 좋은 건 줄 알고, 난 내 주위만 맴돌며 살아왔던 것 같다.

이솝우화 <토끼와 거북이>
거북이는 걷는다. 주위를 의식하지 않은 채, 자신의 페이스대로 걷고 걷는다. 반면, 토끼는 뛴다. 허나, 자기 꾀에 넘어가 종국에는 거북이가 레이스에서 승리를 하게되는 결과를 낳게된다.

너 자신을 알라.
언젠가부터, 난 <토끼와 거북이>라는 우화에 등장하는 거북이를 닮고싶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아이러니컬하지만, 내가 살아왔던 20대의 캐릭터(토끼)는 완전히 벗어던지고, 정반대되는 캐릭터(거북이)를 표방하게 된 것이다.

화려한 수식과 언변은 집어치우고~
진짜 나의 참된 자아를 찾아, 조금씩 내 페이스를 찾아가고 싶다. 그동안 학대해왔던 나의 주관을 끄집어내, 허황된 꿈을 좇기 보다는 내 자신을 채워나갈 것이다.

남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한 평생 외길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가 갑자기 생길리 만무하지만, 난 그만 20대의 겉치레 과거는 빨리 잊고 내실있는 진정한 나의 인생을 찾고자 앞으로의 십년을 설계코자 한다.

부디, 거북이처럼 풍파에 흔들리지않고, 심지있는 멋진 인생을 살아가기를^^
'2010년 경인년(庚寅年) 호랑이의 해'
의 너의 다짐이 '2020년 경자년(庚子年)'에 새로운 희망으로 이어지기까지 후회없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자!

                          아자~ 아자~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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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2.3.4가동 | 보신각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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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인생의 전성기인 20대!!
과연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최근의 일이라서 그런지, 어머니의 수첩에 찌질한 것들도 꽤 많이 적혀있습니다. 그냥 즐감하삼!

일곱번째> 1999년 3월 22일 군대 입소
공교롭게도 내생일날 나는 훈련소에 입소했다. 당시에 어머니가 바쁘셔서, 난 외할아버지가 훈련소까지 배웅해주셨다. 그로부터 2년 2개월동안 어머니는 단 한차례도 면회를 오시지 않았는데,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나에게, 어머니는 가끔 군대시절 한번도 가보지 못한 것을 가지고 당신 맘이 아프셨는지 얘길 꺼내신다^^

자대배치를 받았을 때, 군대 고참들이 신병들을 데리고 장난친다고, 식판에 밥만 한가득 주었던 기억이 난다. 근데 내가 그걸보고 '헉'이라는 한숨을 내셨다가, 신병새끼가 빠졌다고 졸라 맞은 기억이 난다..당시에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아울러, 고참 시절에는 내가 구보를 워낙에 좋아해서, 일부러 5바퀴 돌 것을 10바퀴, 20바퀴씩 후임병들을 데리고 함께 돌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후임병들을 만나면, 늘 나한테 하는 하소연은 당시에 구보때문에 죽을 뻔했다는 넋두리 뿐이다^^


여덟번째> 2001년 9월 11일 911테러사건
군대 제대를 하고 고향 속초에 있던 시절이다. 그날 개인적인 이슈는 없었는데, 암턴 '911테러사건'에 전세계가 경악해하고, 이듬해엔가 강대국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 선포와 동시에 빈라덴과 후세인 마녀사냥을 필두로 미국의 동맹국을 중심으로 아프가니스탄과 걸프만에서 일대 전쟁을 일으켰다.

아홉번째> 2002년 9월 태풍루사 속초강타!= 물에 잠긴 노래방

사용자 삽입 이미지SAMSUNG TECHWIN CO., LTD | Digimax 370 / Kenox D370 | Portrait | Multi-Segment | 1/4sec | f2.8 | 0EV | 5.8mm | ISO-141 | No Flash | 2006:12:31 10:40:28

당시 물에 잠겼던 노래방 외벽 모습^^


자연의 무서움을 처음으로 깨닫던 때가 바로 그날이었다.

강원도 영동지방을 지나간다고만 알았던 태풍 루사 녀석은 강릉, 속초, 동해, 삼척등 동해안 일대를 삽시간만에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당시 오후까지만해도 주룩주룩 내리던 비가 오후 7시쯤인가 도로가 침수하기 시작하더니, 얼마 안있다가 우리 노래방(지하에 위치)이 잠긴다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도로를 헤엄치다시피해서 노래방까지 갔던 기억이 난다.

물을 퍼고, 동사무소로 쳐들어가서 펌프기를 빌리려갔는데, 이미 모든 장비는 지원을 나간 상태였고, 우린 바케스로 지하로 흘러들어오는 물을 퍼나르기에 정신이 없었다. 순간 어머니의 상황대처능력이 빛을 발해서였을까? 어머니는 이상황을 돌이킬 수 없다고 판단해서인지, 노래방 기기들과 주변 장비들만이라도 건지자며, 옥상으로 옮기라고 해서, 기기만이라도 옮겨놓았다.


담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뒤에, 아침일찍 노래방으로 갔는데, 지하계단을 내려갈 수도 없이 이미 물이 1층까지 차있었다. 그렇게 속초는 특별재난지역에 선포가 되었고, 많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과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한달가량을 복구에 힘썼다. 당시 조금 아쉬운 부분은 가택이 침수당했다면, 정부보상금이 꽤 많았는데, 우리는 상업지구의 가게만 침수가 되어서 얼마 지원받지 못한 기억이 난다. 그래도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노래방 시설 공사를 마치고, 한달 뒤에 우린 다시 노래방문을 열 수 있었다.


당시엔 솔직히 하늘에 대고 원망도 했었다. 아버지 돌아가신 것도 서러운데, 왜 어머니와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또 주시나 하고 말이다^^ 늘 결론적으로 보면, 당시의 고난이 지금의 밑거름이 되었지만, 그땐 정말 암울했었다~


열번째> 2002년 11월 내동생 수능
그해 겨울..동생은 고3신분으로 대입수능을 치렀다. 워낙에 가족의 보살핌없이 혼자서 잘해 온 녀석이라, 큰 걱정은 안했다. 다만, 9월에 태풍 루사로 인한 막대한 피해에 동생녀석 또한 맘편히 공부를 할 여건이 못되었었다. 물론 어머니와 내가 다 처리해나가면서, 동생에게는 공부만 하라고 다독거렸지만, 어찌 동생의 맘을 모르겠는가?


녀석 또한 도와주지는 못하고 공부를 해야하는 당시의 처지에 많이 힘들어 했던 것으로 안다. 암턴 녀석이 무사히 시험을 치르고 대학까지 잘 진학했다^^


열한번째> 2003년 3월 동생 재수 결정 후, 나와 서울집 합류
동생이 갑자기 1년 더 공부하겠다며 재수를 결심했다. 당시 나와 많은 부분 상의를 하였는데, 일단 동생의 의지가 강해서 1년간 내가 살던 집 근처(잠실)의 재수학원 종일반에 등록하였다. 녀석 또한 힘든 결정이었고, 나는 어머니도 없는 상황에서 졸지에 1년동안 뒷바라지를 하게 되었다. 나또한 학교다니랴, 아침 일찍이 동생 도시락 챙겨주랴, 정말 눈코뜰새없던 한해를 보냈던 것 같다.


열두번째> 2003년 10월 21일 맹장수술
갑자기 복통이 왔다..그래서 밤새도록 배를 잡고 있다가, 안되겠다 싶어서 응급실을 찾았었다. 당시 종합병원에는 레지던트가 있었는데, 나의 복통을 맹장으로 생각치않고 체한 것으로 봤는지, 관장을 하곤 그냥 방치해 두었다. 덕분에 그담날에도 계속된 고통 속에, 응급실을 아침일찍 나와 개인병원을 찾았는데, 맹장을 의심했고 난 그렇게 개인병원에서 맹장수술을 받고 완쾌하였다. 엄마는 참 소소한 것까지 수첩에 적어두신 것 같다. 맹장수술까지 기억하게 될 줄이야^^


열세번째> 2003년 12월 21일 미국으로 출발
당시에 난 처음으로 뱅기를 타고 해외를 나가게 되었다. 3학년 2학기때부터 꾸준히 준비해서, Work&Travel 프로그램을 통해 플로리다로 갔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부터 한국 대행업체가 말해주었던 환경과 많이달라 당황했지만, 암턴 짧은 2달여동안 이것저것 많이 보고 배웠다. 넓은 식견까지는 아니더라도, 함께갔던 친구들과 많이 싸돌아다닌 기억이 난다^^


열네번째> 2004년 8월 5일 중국, 일본 출발
학교에서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운이좋게 중국, 일본 대학 탐방단에 합류하게 되었다. 일주일동안 공짜루 해외여행한다는 기쁨이 가장 컷고, 솔직히 말도 안통하는 일본의 와세다 대학, 중국의 청화대학 친구들과의 만남은 별루 기억에 안남는다^^


열다섯번째> 2004년 9월 24일 첫출근
향년 26세의 나이에 난 첫 취업을 하였다. 언론계열의 회사로서, 아무것도 준비안된 나를 받아준 그 자체에 감사할 따름이다. 당시의 면접관이었던 팀장님만 나를 좋게봤는데, 그분이 데리고 일할 사람이라서, 다른사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를 선택하셨다는 후문이다. 그렇게 난 정식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운이좋았던 것 같다.


열여섯번째> 2005년 2월 대학졸업
애들 도서관에서 공부할 때, 난 서클 활동에 대학생활을 허비했다. 허비했다는 표현이 참 감질나지도 않지만, 어찌되었건 나의 대학생활은 츄리닝 복장의 동방에 라꾸라꾸 침대를 갔다놓고 자취생활을 그곳에서 영위한 '영원한 복학생'이었다. 그런 내가 대학 졸업 강단에 섰을 때, 후배들의 느낌은 남달랐다고들 했다. 더욱이 부족한 내가 총장님 상까지 받았기에, 울 동기들은 믿을 수 없는 일로 아직까지 나를 놀려댄다. 물론 공부잘해서 받은 게 아니라, 서클활동 열심히 해서 받은 공로상이다^^


열여덟번째> 2005년 9월 26일 이직
아는 선배 소개로 한회사의 면접을 보게 되었다. 그게 잘 풀려서, 난 회사를 옮기게 되었고, 지금까지 이곳에 적을 두고 잘 버티고 있다^^ 물론 첫직장에서 날 뽑아준 팀장님도 내가 자리를 옮기기전에 이미 딴회사로 가셨다. 언론계가 워낙에 이직이 심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열아홉번째> 2006년 7월 와이프와 소개팅^^
그날 난 고향친구 녀석의 소개로 와이프를 인사동의 한정식집에서 만났다. 보란듯이 난 지각을 했고, 이해심 많은 와이프는 날 기다려주었다. 첫날부터 난 동동주를 먹자고 제안했고, 와이프는 어이가 없었지만 그럭저럭 분위기가 좋았다. 솔직히 소개팅 당일, 와이프는 날 그렇게 맘에 두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한다. 허나 나의 비장의 무기~~ 난 당일날 회사에서 받은 스펜서존슨의 ▶선물◀을 선물했다..그날 내가 이 책을 안주었더라면 우리사이가 어케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스무번째> 2007년 5월 26일 결혼!

돈도 없고, 빽도 없던 시골촌놈이 드뎌 결혼에 골인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케 진행이 되었는지 모를 정도로 결혼이라는 것이 운명처럼 다가왔나부다..난 그렇게 서른을 넘기지 않고, '29'이라는 나이에 결혼을 했고, 나의 이십대의 마지막을 기념하는 일생일대의 최대사건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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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대로 스토리텔링하는 공간>블로그 이름이 시니컬하죠^^ 왜 젓깔이냐 굽쇼? 비린내나는 젓깔이 내포하는 풍자적 뉘앙스(조까)를 토대로, 1人 대안세력으로서 사회적 담론을 함께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자~ 그럼, 젓깔닷컴이 푹~삭힌 진득한 이야기 속으로 빠져 보실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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