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아침..

집 앞을 거닐다가, 문득 내가 삼십대 중반이란 걸, 되내이게 되었다.

 

아직 20대 청년의 마음가짐이라 다짐하지만,

- 과음한 다음날, 업무에 집중은 커녕, 앉아있는 것 조차 괴로울 정도로 빌빌거리기 일쑤고,
- 출근 하는 길, 교복입은 학생들이나 20대 대학생들을 보면 부러워지기 시작했으며,
- 하루게 다르게 깊어만 가는 이맛 주름은 인정하기는 싫지만,

이제 내 나이 삼십대 중반이란 것이 현실처럼 다가오기 시작했다.

 

'후회'하는 것조차 사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앞만 보고 달려온 내 자신에게 후회는 없다. 다만 가끔 숨막힐 정도로 가슴 속에 차오르는 공허함은 나의 자존감을 무참히 짓밟는다.

 

그건 아마도,

내 스스로 지금까지 잘 버텨왔지만, 잘 살아온 것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하루에 한번, 나를 찾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그래, 오늘을 계기로, 그동안 무뎌진 나의 감성 세포들을 먼저 일깨우고,

하루 하루, 잊고 살아갔던 소소한 가치들에 행복을 찾아가는 삶을 살아보자!

 

삼십대 중반..

어쩌면 인생의 정점을 찍고 퇴로를 준비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생각에,

후회없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 나가고자 한다.

 

그 첫걸음을..

5년 여만에 다시 찾은 이 공간을 통해, 시작해 나가고자 한다..

매일 매일 나를 되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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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30대, ,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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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루 일과?
아침에 컴퓨터를 마주하면서 시작한다. 하루종일 모니터만 쳐다보는 건 이제 일도 아니다. 그리고 집에 가서는 또 남은 시간을 TV 모니터만 바라보다가 잠이 든다..

그렇다..
매일 매일을 모니터를 마주하면서 난 생활하고 있다. 모니터에서 나오는 뜨거운 열기에 가끔 짜증이 날 때도 있지만, 이제는 이 녀석과 함께하는 시간이 내겐 일상이 되어버렸다.

반대로..
책만 펴면 낮이고 밤이고 잠이 쏟아진다ㅜㅜ 잠시 춘곤증이라고 생각하지만, 30분도 채 안되어 화학적 반응이 시작되는 것을 보면 이미 내 몸이 독서에 낯설어 하는 게 틀림없다.

근래들어..
지하철이나 버스를 제외하곤, 집에 잔뜩 꽂혀있는 서재근처를 가본 경험이 드물게 된 것도, 나의 모니터 편력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책만 펴면 졸려오는 내 모습이 한심스럽다. 더불어, 수동적 삶에 적응하여 무감각 무표정으로 변해버린 내 자신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난 이성적 동물인데, 왜 주체적 삶을 살아가는 걸 두려워할까?

주말에
훤히 트인 산에 오르거나 하면, 가슴 속 짓눌렸던 폐쇄적인 응어리(?)가 한순간에 뛰쳐나오기도 하지만 그저 그 순간 뿐이다.

가끔
사람 정이 그리워, 지인들과 소주잔을 기울일 때가 있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잊혀졌던 아날로그적 감성이 풍부해지면서 본연의 내 모습을 되찾곤 한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가끔 정신 줄을 아예 놓아 버리는 게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순수했던 나의 자아여..
이것도 계산, 저것도 계산하며 심지어 사람관계까지 요리저리 좁은 잣대를 기울이며 난 생활해왔다. 누군가가 호의를 베풀면 먼저 의심부터 하고, 되레 그 사람을 멀리 해야겠다는 생각마져 든다.

어렸을 적엔..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라고 배웠건만, 이젠 주변이 되레 공공의 적이거나 대게 얼굴도 모르면서 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이 사회의 불신의 벽은 단순히 위정자들에게만 속한 게 아닌, 서민들의 뼛속까지 점령한 게 틀림없다.

세상에 피해만 주지않도록 조용히 살면 되지^^
이렇게 사고하는 내가, 감성이 어쩌구하는 건 정말 우습다. 나같은 무미건조한 존재가 책을 펴면 졸린 것도 당연한 세상의 이치요. 지금까지 잘 버텨온 것만 해도 장하다.

잊고 산 1%의 감성에 그래도 99%의 내 인생을 건다.
내게도 유토피아는 있다. 잠시 잊고 살아갈 뿐, 언젠가 드넓고 푸른 이상향의 세계를 꿈꾸며 살 것이다. 마치 고향에만 가면, 마음이 편해지고 어릴적 순수했던 본연의 모습을 되살아나듯 말이다.
2009/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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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청명한 하늘을 보았다.

어찌나 하늘이 맑던지,
가시거리가 서울 끝까지 닿았다^^

세상을 염탐하는 듯한 눈초리로,
차창밖을 기웃거리며 조심스레 하늘을 본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곤 다짐했다!

언제나 땅을 보고 걷는 나..
덕분에, 시야가 상당히 좁아졌다.
마치 내 마음이 그렇하듯이..

지하 땅 속의 좀비와 같은 존재라고만 여겼는데,
비로소 하늘을 마주하게 되었다.

기쁘다!
내게도 올려다 볼 화창한 미래가 보이는 구나^^

가끔 하늘을 보고 걷자.
그리고 드높이! 자주! 멀리! 보자꾸나~

눈 앞에 연연해 하지 말며..
앞을 내다보는 천리안을 갖자!

비로소, 다시 깨달았다.
내가 세상의 중심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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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2월 31일
새천년을 맞이하는 밀레니엄 시대에,
온 국민은 환희와 기대감으로 벅차 있었다.

한 세기를 넘어,
천년의 시간을 뛰어 넘어가는 그 순간..

새로운 시대로의 도약을 염원하며, 
모두가 덩달아 신나했던 그 당시를.. 잠시 회고한다.

난 아마도,
그 소중한 순간을 군대에서 맞이하게 되었다지ㅠㅠ

1999년 12월 31일 보신각

새천년을 맞이한다는 1999년의 마지막 밤.. 이날 우린 보신각 앞에서 혼잡경비를 섰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한명의 시민이 종각역에서 압사를 당했다고 나는 기억하고 있다.

내가 기억하는 1999년..
누군가 난세 속에 영웅이 나타난다고 했었지. 허나, 1999년의 12월에는 '밀레니엄 시대로의 도약'보다는 유독 종말론을 외치며, '인류의 위기'를 외치며 국민혼란을 부추기는 종교계의 이단아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기도 했다.

그렇게 12월의 마지막밤이 오고..
난, 군복무 중에 있었다. 수도 서울의 치안을 위해, 나라를 충성하며 시위대와 힘겹게 싸우던 그 당시.. 우리 부대는 당시 밀레니엄 시대를 알리는 <보신각 타종행사>에서 혼잡경비를 맞게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새천년의 희망을 바라보는 그 현장에서, 나 또한 함께 할 수 있음을 기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분대장을 단지 얼마 안되어 소대내에서 짬밥이 좀 되던 나로서는, 혼잡경비를 맞았다기 보다는 시민과 함께 축제를 즐겼다는 것이 아마도 딱 어울리는 표현일 것이다.

종각부터 대학로까지..
9시 광화문 혼잡경비, 12시 종각 타종행사, 새벽 2시 대학로 마로니에 광장의 콘서트 현장까지, 쉴새없이 뛰어다녔지만 그날만큼은 우리 또한 마음이 들뜬 채로,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며 현장을 즐겼었다.(물론, 그날 안타깝께도 종각역에서는 넘쳐나는 인파 속에, 시민 1명이 압사를 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기도 했다.)

'치열하게 20대를 살아보자'

그렇게 나는..
생생한 보신각의 타종 소리를 들으며, 다가 올 십년의 인생에 대한 새로운 다짐을 할 수 있었다.

2009년 12월.. 어느날, 어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눈만 깜짝하면 십년이란 세월이 금방 지나가는 구나.. 벌써 2009년 12월이라니.. 그렇고보니 그 십년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내.. 너가 군대도 다녀오고, 학교 졸업하고, 취업까지 했으니 말이다.. 할아버지/할머니도 돌아가셨고 이제 너까지 결혼한 마당에, 엄마도 60대를 바라보게 되었내.. 옛 어른들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는 것 같아..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세월이 이렇게 빠르구나..

어머니의 말씀이 끝난 뒤로도, 난 그 말씀을 계속해서 곱씹으며 생각했다.
맞다.. 내가 1999년에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다짐을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정말 십년이란 시간이 흘러, 2009년이 되었구나..

십년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십년을 계획하자!
난 정말 당시의 다짐과 같이 치열하게 살아왔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스'다. 나의 이십대는 그 누구보다도 후회없이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지나간 과거, 지금에서 후회해봤자~ 또,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젠, 앞으로의 십년에 대해 난 진지한 성찰과 함께 다짐을 하고자 몇 자 남긴다.
<관련글 보기>2007/12/21 - [20대의 끝자락] - 나의 이십대를 말한다!

2010년! 호랑이가 아닌, 거북이가 달린다!
그렇다. 경인년의 해에, 난 호랑이가 아닌 거북이가 되기로 결심했다. 더 솔직하게 20대의 인생을 동물로 비유하자면, 난 토끼가 앞만보고 달리듯 살아왔다. 뒤도 돌아볼 겨를없이, 소중한 20대를 다 보낸후에야, 비로소 내가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나를 위해, 거북이가 되련다.
겉치레만 신경쓰던 20대였다. 속빈강정마냥, 주변의 시선만 의식하던 나였다. 정작, 자신에 대한 확신은 없었으면서도, 그렇게 다른 사람이 좋다면 좋은 건 줄 알고, 난 내 주위만 맴돌며 살아왔던 것 같다.

이솝우화 <토끼와 거북이>
거북이는 걷는다. 주위를 의식하지 않은 채, 자신의 페이스대로 걷고 걷는다. 반면, 토끼는 뛴다. 허나, 자기 꾀에 넘어가 종국에는 거북이가 레이스에서 승리를 하게되는 결과를 낳게된다.

너 자신을 알라.
언젠가부터, 난 <토끼와 거북이>라는 우화에 등장하는 거북이를 닮고싶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아이러니컬하지만, 내가 살아왔던 20대의 캐릭터(토끼)는 완전히 벗어던지고, 정반대되는 캐릭터(거북이)를 표방하게 된 것이다.

화려한 수식과 언변은 집어치우고~
진짜 나의 참된 자아를 찾아, 조금씩 내 페이스를 찾아가고 싶다. 그동안 학대해왔던 나의 주관을 끄집어내, 허황된 꿈을 좇기 보다는 내 자신을 채워나갈 것이다.

남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한 평생 외길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가 갑자기 생길리 만무하지만, 난 그만 20대의 겉치레 과거는 빨리 잊고 내실있는 진정한 나의 인생을 찾고자 앞으로의 십년을 설계코자 한다.

부디, 거북이처럼 풍파에 흔들리지않고, 심지있는 멋진 인생을 살아가기를^^
'2010년 경인년(庚寅年) 호랑이의 해'
의 너의 다짐이 '2020년 경자년(庚子年)'에 새로운 희망으로 이어지기까지 후회없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자!

                          아자~ 아자~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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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무늬만 철학도다.

부끄럽지만 철학과 출신인 나는, 학창시절에 전공에 대해 큰 애착을 갖지 못했었다. 그저 취업의 한 방편으로 <졸업장>을 따기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 사실이다.

학점위주의 전공 선택과 최소학점 이수에 치우친 채,
난 수많은 과외활동 위주의 취업 스펙과 실용적인 지식에만 배고파해왔다. 물론, 취업이 목적이 되고자, 그래왔던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공부에 뜻이없는 나로서는 학점&토익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여러가지 활동으로 그 빈공간을 채워나간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일까?
가끔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전공을 묻는 분들이 있을 때면, 난 주저하게 된다. 마땅히 전공과 관련해서, 할 얘기도 많지않거니와 깊게 파고들면 들켜버릴 얕은 전공지식 덕분이다^^

물론,
처음부터 전공을 선택할 때 그런 마음가짐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나에게 '철학'이란 학문은 대학 4년 내내 아무런 도움도 안된다고 생각했을 뿐더러, 취업에 급급했던 내겐 부수적인 존재가 분명했다.

그런 내가,
요즘들어, 전공에 대한 애착이 조금씩 생겨난다. 당시에 선배들마냥 학회에서 열심히 토론도 하고, 나의 관심분야(도가사상, 정신분석학)에서 심층적인 공부를 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같은 거 말이다. 아무쪼록 전공에 대한 아쉬움은 여기까지 끊고, 지난 주에 내가 겪었던 일화를 소개코자 한다.

엊그제, 등산을 했을 때였다.
수북히 쌓인 낙엽과 벌거벗은 나무를 바라보며, 인생의 무상함이 떠오르게 되었다. 불과 한,두달 전만해도 무성한 나뭇가지였는데, 이렇게 모든 것을 벗어던질 줄 아는 자연의 위대함에 잠시나마 숙연해졌다고나 할까?

아무쪼록 지나칠 수 있는 상황인데, 나름대로 인생을 회고할 수 있는 그런 순간이었다. 그렇게 산을 오르는 내내, 스쳐지나갔던 인생과 특히나 내가 철학이라는 학문을 선택했었을 당시의 초심이 떠오르기도 했다.

숲 속의 모든 만물도 자신을 분명 되돌아 보겠지..
매년 이렇게 한꺼풀씩 허물을 벗어내는 나무들도, 이맘 때면 자신의 일년을 되돌아보며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하는 데, 난 그동안 왜 이렇게 숨가프게 살아왔을까하는 후회가 조금씩 밀려오기 시작했다. 어짜피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떠날 텐데, 왜 난 모든 것을 가지려고만 했을까.. 그리고 베푸는 것에 인색한 내 모습에 자괴감을 느끼며 의미있는 산행이 되었던 것 같다.

나무의 일년을 되돌아보며,
그들의 사계(봄,여름,가을,겨울)
가 마치 우리내 인생사(희,노,애,락)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노랫말처럼 한치 앞도 모르는 인생사라지만, 우린 분명 빈손으로 자연에 기대어 살다가 다시금 자연의 품속으로 돌아가는 게 이치다. 나 또한, 속에 꿈틀대는 이기 속에, 나만의 안녕을 위해 지금껏 달려왔지만 그 순간만큼은 진실되게 세상을 되돌아 보게 된 순간이었음은 분명했던 것 같다.

짧은 산행이었지만,
또 다른 태어남을 준비하는 자연의 위대함에 보잘 것없은 인간으로서 많은 것을 배우고 간 시간이었다고 자평하는 순간, 왜이렇게 뿌듯하던지^^ 아무쪼록, 당시를 회상하며, 오늘 그 즐거움을 이곳에 남기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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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버스 - 6점
존 고든 지음, 유영만옮김/쌤앤파커스

서재를 지날때마다, 유심히 지켜본 책이 한권 있었다. 우화 종류의 자기계발서는 이제 좀 질렸다 싶어서, 서재 한켠에 꽂아놓고 있었던 ★에너지버스★라는 녀석이다.


뻔할 것 같다는 걸 알면서도,
이책에 손이 가는 이유는 요즘 정신적으로 많이 피폐해진 나에게 동기부여를 해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고^^
스테디셀러 반열에도 올랐기에 한번 읽어봐야지.. 이렇게 맘먹기를 며칠, 결국 주말을 넘기고 어제서야 책을 찬찬히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평일..그것도 퇴근 후 늦은 시간ㅡㅡ
내가 책을 손에 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뿌듯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간 이런적이 없었거니와, 그만큼 내게 절실한 무언가를 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뻔할 것같은 내용이라는게 맘에 들지 않았지만, 이놈의 경우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많은 평판을 얻은 책이라는 것에서 반은 먹고 들어간 셈이다^^ 베스트셀러라는 놈에 좌지우지하기 싫은 나에게, 이책은 펼치는 순간부터 이미 나와 팽팽한 기싸움을 시작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이놈..간만에 내가 널 간절히 원해서 선택했는데, 나 실망시키면 알아서해!"


그렇게 한장, 두장 넘기며
난 어떤 특별함을 원했던 내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건 읽으면 읽을수록 내게 어떤 정답을 알려주기 보다는, 인생의 가장 보편적이고도 평범한 진리로 다가서려했기 때문이다.


"야.. 너가 기왕 짊어지고 갈 인생이잖아. 그럼 좀 더 능동적으로 살아가면 어디가 덧나니?"
버스운전기사 조이는 내게 계속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너"라는 화두를 던지며,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나가게끔 이끌어주었다.


읽다보면 느끼게 되는 그녀의 뻔할 것 같은 얘기..

하지만, 다시금 되짚어줄만한 충분한 가치가 분명 있었다. 일례로, CEO(Chief Energetic Officer)가 되라는 조이의 말에, 난 결코 CEO(Chief Executive Officer)가 될 수 없다며 놀래는 조지의 모습에서 바라볼 수 있듯이, 우리는 자신의 인생의 장막을 쳐놓고 그냥 지금 이순간에 안주하면서 비전없이 하루하루를 살아나가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많은 반성과 함께, 마치 내가 좀비와 같은 존재로 느껴지던 것이, 결국 머릿속에서 한동안 가시질 않았다. 절대 좀비와같은 존재로 살아갈 순 없다는 '자기방어'를 하면서 이성을 조금씩 회복했다고나 할까^^

직장생활에 치이고,
 결혼을 하며 경제적인 압박에 늘 가슴조이는 "나"를 바라보며, 초심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주인공 조지처럼, 예전에 나는 안그랬는데, 지금 이렇게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며 체념하듯 살아가고 있는게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일상 속의 작은 즐거움^^

상투적이고 따분할 것 같은 내용의 이 책에서 난 삶의 메시지를 볼 수 있었다. 모든게 책에 나온대로, 따라하기만 하면 술술 풀리는 식의 성공스토리는 분명 드물다. 허나, 조이의 첫번째 메시지와 마지막 메시지를 가만히 곱씹어보면 에너지버스를 끌고갈 인생의 지혜를 얻는데 충분한 동기부여가 된다.


'당신 버스의 운전자는 바로 나 자신이다'라는 것과 '버스를 타는 동안 즐겨라'라는 조이의 메시지가 어렴풋이 귓가에 맴돈다..

이보게 당신!
이제 에너지 뱀파이어와 같은 존재에서 벗어나, 당신 인생을 살아보도록 하세~

인생.. 그까이꺼 좀 여유롭게 삽시다^^SAMSUNG TECHWIN CO., LTD | Digimax 370 / Kenox D370 | Landscape mode (for landscape photos with the background in focus) | Pattern | 1/350sec | F/7.0 | 0.00 EV | 9.1mm | ISO-63 | Off Compulsory | 2007:03:17 07:07:47

인생.. 그까이꺼 좀 여유롭게 삽시다^^

Posted by 언어의 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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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들 '인생'이란 두글자를 회상할 때,
후회가 없다면 거짓이겠죠.. 굴곡없는 인생살이를 산 분도 드물 것이요. 이름 석자를 내걸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소설'같은 사연을 가진 분들도 참 많을 것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저는 명함도 못 내밀지만, 이 느즈막한 밤에 혼자 감성에 젖어 몇 자 적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늘 말씀하시던 'Go~ Go~ Mountain'이란 문구처럼,
저도 짧다면 짧은 30년의 인생살이를 되돌아 볼때, 참 순탄치만은 않았던 된 것 같습니다. 그저 지금껏 달려온 것만으로도 선방(?)하며 잘 견뎌내 왔다며 기특해 한다죠^^

중학교 시절, 아버님이 돌아가실 때도 그랬고,
고등학교 시절, 집에 경제적 위기가 왔을 때 방황한 것도 그랬고,
대학교 시절, 어머니가 하시던 노래방에 수해가 났을 때도 그랬고,

하지만, 돈 없이 결혼 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하며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천사같은 와이프를 만나 결혼에 골인하게 된 '행운남'이죠
.
(물론, 지금은 와이프가 결혼을 앞둔 친구들에게 심심찮게 이런 말을 합디다. ' 얼굴이고 능력이고 뭐고 다 필요없고, '돈'많은 남자가 최고다라고 말을 하더군요. 아마도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인듯 싶어, 듣고있으면서도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참..그러고 보니, 전 희노애락에 눈물이 거의 없습니다.
상견례를 하던 당일날.. 갑자기 맛난 한정식을 먹다가 혼자 울컥했던 기억이 납니다. 왠지 모르게, 평소에는 생각도않던 아버지가 이 자리에 없다는 게 원망스럽더군요. 참 내.. 덕분에, 어머니까지 옆에서 괜시리 눈물 흘리게 만들고, 결국 예비장인어른(사실, 장인어른도 아버님을 일찍 여의셨거든요. 덕분에 저를 잘 이해해주신답니다)까지 눈물을 쏟으시는 언빌리버블한 시츄에이션이 연출되었습니다. 

후회라기 보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근데, 요즘 결혼하고 모자람없이 잘 살고 있지만, 가끔 와이프를 보면, 저도 모르게 가슴 한구석에서 뭔가 끌어오르듯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이 아이를 보았더라면, 정말 기뻐하셨을 텐데'

와이프를 보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이 녀석이 정말 우리집 식구가 되려고 했는지, 아님 제가 그렇게 합리화 시켰는지는 몰라도, 아버지 성격에 이 아이는 너무나 완벽한 며느리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살림살이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은 물론이요, 많이 부족한 것도 많지만, 제가 전적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주부'로서의 '자질'이 아닌, '며느리'로서의 사랑받은 만한 '자질'이 아버지와 너무 잘 어울린다는 것입니다.

가끔 어머니도 아버지가 이 녀석을 보았더라면 얼마나 좋아했을까라는 말을 종종 하셨지만, 새애기로서 손이 귀한 집안에 식구가 늘어난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셨을 것입니다. 어쩌면 어머니도, 아버지가 계셨다면 더 이뻐하고 소중하게 여겼을 거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내요.

동물을 지나치게 좋아하셨던 아버지..
교편을 떠나시고, 가족들을 데리고 아무 연고도 없는 강원도 속초로 이사가자고 했을 때 어머니는 많은 원망을 했다더 군요. 늘 자연과 벗삼아 여행을 즐기셨고, 일본어를 독학하시곤 현해탄을 건너 애견관련 자격증을 따오셨을 정도로, 동물에 관심이 많으셨던 분입니다. 아마도 노년은 칠면조 농장이나, 수족관 혹은 애견 미용샵과 같은 관련분야의 일을 하셨을 겁니다.

본 내용과 무관한 사진으로, 가족을 연상시키기에 첨부함

본 내용과 무관한 사진으로, 가족을 연상시키기에 첨부함


이런 일련의 추억덕택에,
아버지에게 와이프를 소개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지금도 간절하답니다. 아마도, 둘은 '동물'을 업으로 하는 공통성때문에 질투가 날 정도로, 친밀해졌을 것입니다. 특히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와이프와 함께 속초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셨을 테고, 지금쯤 대박(?)이 났을 거라는 기분좋은 상상도 합니다. 아버지는 애견미용을 담당하고, 와이프가 진료를 보고, 제가 마케팅을 하면, 그야말로 인건비 걱정없이 속초에서는 남부럽지 않게 살아갔을테죠..

아무쪼록, 참 부질없는 생각인데,
와이프만 보면, 더더욱 아버지를 생전에 소개 못 시켜준 게 가슴에 제일 걸립니다. 어떻게든 아버지와 와이프를 연결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에 더더욱 쓸데없는 상상으로까지 치닫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살아 생전에, 이 녀석을 인사 못시켜 드린 죄송함이 평생 가슴 속에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어린 아들 놈이 결혼 한 것도 대견스러우실 텐데,
평생의 반려자를 데리고 온 모습을 보시자마자, 한없이 기뻐하셨을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좋아하는 동물 분야의 일을 하는 며느리느 더할나위없이 값진 보물이었겠죠. 못난 아들 녀석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효도선물'에 대해 너무나 만족하시지는 않았을까 모르겠내요^^

그렇습니다.  
아버지 묘비에 적힌 당신 이름 석자 뒤에, 언제나 하늘나라에서 지켜주는 사랑하는 가족 이름이 적혀있죠. 이제 그옆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며느리 이름도 들어가 있으니, 가끔 내려와서 서운함을 달래세요. 그리고 머나먼 그곳에서 잘 지켜보고 있으리라 믿을께요. 대신 저는 잘 사는 것으로 못다한 효도를 대신코자 합니다. 이쁘게 지켜봐 주세요^^

*덧붙임
내일 한 주의 시작인데, 참 지지리궁상이죠^^ 사실, 지금 처갓집인데요. 아까 저녁 때, 밥먹으러 오라는 장인어른의 호출로, 이곳에 갑자기 왔습니다. 간만에 장인어른이랑 술 한잔 했는데, 옛 생각도 나고, 아버지 생각이 사뭇치길래 청승 좀 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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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의 주소록..
그 시절의 이모티콘.. 그 시절의 UCC..
  한 기업 CF를 인상 깊게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흑백화면에 비춰지는
당시의 생활상을 그대로 녹여낸.. 그러나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불과 몇 년 전의 추억이 담긴 그 시절을 떠올리며, 삽시간에 스쳐가는 당시의 기억이 어찌나 유쾌하던지, 잠시나마 행복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호수와 바다가 어우러진 나의 모교는 내맘속 한켠에 늘 남아있는 그 시절의 모습이다>


수줍었던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마음 속 고이고이 간직했던 풋사랑의 달콤한 쪽지를 친구를 통해 전달하고, 다시금 그 친구를 통해 답장을 받던 그때.. 가슴이 어찌나 설레던지, 순수했던 당시의 아련함이 떠오릅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 눈치만 보던 코흘리개가 있었습니다.

교과서 모퉁이에 지금의 졸라맨과 비슷한 캐릭터를 그려 넣던 아이는, 연신 책장을 넘기며 흐뭇해 할 뿐입니다. 이제 곧 다가올 쉬는 시간에, 친구들에게 자랑할 생각을 하니 말입니다^^

 

 

세상은 디지털로 가고 있는데,
이렇게 가끔 감성에 젖어 아날로그에 대한 추억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끔 시골에 가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합니다^^

 

문명의 혜택을 받으며 예전의 불편함을 잊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누리는 혜택을 외면하면서까지, 과거로 회기하고 싶냐라고 묻는다면,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노인폭행사건에 연루되었던 모 연애인은 문명의 세계에서 잠시 벗어나 도인생활을 하며 반성하고 있다는데, 이는 특별한 경우죠^^)

 

디지털 한가위의 풍경

짧은 연휴탓에 시골에 계신 부모님 역귀경을 하고, 제사음식은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친인척 선물은 택배로 보내버리고, 주변 안부인사는 문자로 대신하며 저는 그렇게 살고 있고,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가끔, 추석이 한가로이 보내는 휴가 정도로 의식할 때도 있습죠.(주변에서는 이런 기회에 해외여행을 떠나기도 합니다^^)

 

허나 뭔가 부족하단 생각이 듭니다.

돈만 있으면, 뭐든 가능한 세상입니다. 그런데 문명에 의지하면 의지할수록, 왠지 모를 불신의 벽이 높아져가는 것만 같고, 나약해져 가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얼마 전, E’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공간에서 인간이란 위대한 창조물은 자기 능력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이, 그저 주는 데로 먹고, 시키는 데로 하며, 오히려 로봇보다도 지각능력이 떨어지는 존재로 표현될 뿐이었습니다. 물론 가상세계일 뿐이며, 비약이 심한 스토리일 수도 있습니다.

 

손맛이 그립습니다. 그리고 공존해야 합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산업화 시대입니다. 풍요로움 속에, 만족하며 살아온 인간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라도, 문명의 이기가 제 가슴 속의 감성(아날로그적 속성)을 몽땅~ 채워주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레시피가 인터넷에 등장하더라도, 어머니의 손맛에 의해 우러나오는 음식이 더 맛있었고, 수타짜장면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얼마 전, 이빨 치료를 위해 주변치과를 알아볼 때도, 최첨단 기계와 호화의료진을 자랑하는 곳보다는 아는 지인이 추천해준.. 그리고 경험이 풍부한 할아버지 의사선생님이 계신 허름한 치과를 선택하였습니다. 그건 나의 아픈 이빨에 대한 세심한 관심과 연륜에서 나오는 아날로그적 경험이 디지털 기술보다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곤 치료를 마치고, 역시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며 만족해하기도 했답니다^^

 

정크푸드에서 슬로우푸드로..

이제 웰빙열풍은 남얘기가 아니죠? 로하스족이 생겨나고, 통곡물 가공품이 유행하고, 유기농식단이 각광을 받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건강'이라는 화두 속에, 이러한 현상은 잊혀져 가던 아날로그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금 되새기는 하나의 트랜드가 아닐까 싶습니다. 더 이상 농촌으로 귀향하는 것이 도시에서 실패한 자들의 전유물이 아닌 지금, 여러분은 지금 그 시절을 어떻게 떠올리고 계신지 사뭇 궁금해지는 군요^^


즐거운 한가위, 온 가족이 유익하게 보내시길 바라며,

간만에 내려가신 고향에서 어머니의 손맛이담긴 음식과 더불어,

시골(아날로그)의 정취를 맘껏 느끼시고 돌아오는 길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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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꿈이 뭐에요?
퇴근을 하고 약속장소로 가던 중에, 회사후배의 급질문이 날아들었습니다. 당황했습니다ㅠㅠ 그녀석은 그냥 물어본 건데, 제가 받아들이기에는 분명 공격이었기 때문입니다^^

서로 앞만 보고 가던 터에,
이 녀석은 분위기를 띄어보고자 꺼낸 말인데, 제가 쩔쩔매는 것을 보곤 피식 웃더군요--

머뭇거림, 그리고 긁적긁적..
나에게 꿈이라는 것.. 잠시나마 생각하곤 대답한 게 '돈'이라며 퉁명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가 졸업하던 때입니다..이때만 해도 꿈이 참 많았는데^^


꿈이 돈이라고 말하는 너! 세상을 떠나라~~~
짧은 순간이었지만, 대답하고 나서 수습하기조차 힘들었던 시간으로 기억합니다. 속된 말로 쪽(?)이 팔리다 못해, 얘는 왜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해서, 사람을 당황스럽게 하나 싶었으니까요^^


참 처량하도다..그대의 원대한 꿈은 어디로 갔나이까?
어렷을 적 꿈이 뭐냐고 물을 때, 조건반사처럼 대통령(5공 시절엔 대통령이 최고였습니다)이라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 가끔 삐지기라도 하면, 박사로 조금 눈높이를 낮춰 부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랬던 제가!!
세월의 풍파 속에~~~ 이젠 내일은 커녕 하루하루를 근근히 즐기며 살아가는 한량에 그지 없습니다. 세월은 방관하면서, 유명한 분들을 곱씹어 볼 생각이나 하고, 어디서 주워 들은건 있어서 이런 풍월을 읊고 있는 제 자신..여러분들도 감상해보시죠^^


사고싶으면, 엄마카드 긁고
애인생기면, 엄마차 끌고 가고
놀다 돈이 떨어지면~~ 엄마한테 전화하고
생각대로 살면 되고^^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올까나..
가끔 삶이 지칠 때, 세상이 날 지금 시험하고 있는거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곤 합니다. 인생이 내 뜻대로만 살 수 있다면, 그 또한 재미없을 거라면서 말이죠^^ 무언가 부족하기에, 우린 꿈을 갖게 되고, 더 나은 삶을 살고자 각자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건 그래서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도폐유인의(大道廢有仁義)
대도를 따르지 않기에 인의가 나타난다..


노자 가라사대,
'인의'라 함은 이렇게 부덕한 인간들이 대도를 따르지 않을 때, 위기의 순간에 영웅이 등장하고, 가정이 화목치 않기에 효자/효녀가 나타남과 같은 이치로 말씀해주셨습니다.



난세에 영웅이 탄생한다는
말은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예전에 무협지 좀 읽을 때, 공통된 상황설정이 있었는데, 언제나 시대배경은 혼탁했고, 거기서 불세출의 영웅이 탄생하여 세상을 호령하는 식이었습죠.. 꼭 상황이 맞지는 않지만, 제 문제의 답은 어느정도 나온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저로서는,
지금 순리를 역행하기보다는 꿈(인의)을 통해 더나은 삶을 개척해나가야 할 때죠.. 항상 동력을 잃지않고 웃는 제모습을 영원히 상기시키면서 말입니다^^


'1년을 넉넉하게 살고 싶으면 벼를 기르고, 평생을 풍요롭게 살고 싶다면 꿈을 길러라!'
-꿈꾸는 다락방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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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티베이터 - 10점
조서환 지음/책든사자


뻥(?)치는 CEO, 펀(Fun)치는 CEO 

제가 조서환 부사장님(당시에는 상무님이셨습니다)을 처음 만나 뵈었던 것은 04년도 였습니다. 마케팅이 뭔지도 몰랐던 제가, 우연찮게 ‘대한민국 1등 상품 마케팅 전략’이라는 책을 열심히 읽던 시절이었습니다.

 

4P가 뭔지, 3C가 뭔지도 모르던 제게,
솔직히 그 책을 선택한 건 실패였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마케팅 이론도 모르고, 제목에 현혹되어 무심코 고른 책은 휴대하기에 폼이 날지 모르지만, 숙제만 더 안겨주었답니다^^

하늘이여~ 드뎌 이 책을 통달할 기회가 내렸으니,
그건 신문광고에서 접한 OO여대에서 있을 저자의 강연회였습니다. 당시 저자의 알찬 강연도 듣고, ‘TV 인생극장’에 나올 법한, 그분의 파란만장한 인생사까지 덤으로 접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까지 내게 가장 큰 모티베이터는 아내였다.’
오늘 저자의 강연내용은 이 말 한마디에 담겨있습니다. 가장 힘들 때, 옆에서 지켜준 최상의 모티베이터이자, 극한 상황에서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러 일으켜준 ‘아내’라는 존재는 그래서 더욱 고귀하게 들렸나 봅니다.

 

모티베이터라는 단어의 어감상,
그럴싸한 포장 덕택인지 뭔가 있어 보이지만, 이는 누구에게나 있던 존재입니다. 다만, 인생의 가치를 어디서 찾느냐에 따라, 우리의 관점은 크게 달라지겠죠. 저자 역시 이 부분에 주목을 하여 책을 집필했을 것이고, 함축적으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자신감과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만병통치약이다. ‘긍정의 힘’은 먼 곳에서 힘들게 찾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 주변의 따스한 말 한마디에 달려 있고, 나에게 있어서 그건 바로 아내였다." 그래서 스스로 동기부여를 찾았고 모든 열정을 쏟아 부으니 지금의 ‘나’란 존재가 있었다.”

 

이는 제가 개똥철학을 펼칠 때 자주 쓰던 표현인 ‘물 반잔의 차이’와도 같은 맥락이라서 혼자 흐뭇해하기도 했습니다.(역시 난 인생을 똑바로 살고 있다는 우쭐함과 함께 말입니다.)

 

인생에서 진지한 성공을 경험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언가 일확천금을 얻었다는 꼼수를 알려주기보다는 이렇게 수수한 인생의 진리를 토해내는데 그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오늘의 저자 또한 신체적 약점을 극복하고, 편견을 넘어 지금에 있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는 걸 짐작했습니다. 특히 뻥을 쳐서라도, 뱉은 말에 책임을 지는 자세로 일하다 보면, 결국 자신처럼 최고 책임자 위치까지 오를 수 있다는 표현은 가볍지만서도 절대 가볍게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저자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남들이 성공한 사람들을 바라 볼 때, 그 사람의 겉모습만을 보고 판단할 것이고, 그런 점에서 저자의 평가 잣대도 예외가 아닐 것입니다. 그의 인생역정보다는 현재의 비춰지는 모습만을 두고 성공한 부류로 생각하겠죠.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어쩌면 당연하게 비춰질 모습이고, 저 또한 그의 치열한 과정보다는 화려한 결과만을 기억할 것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지금과 같은 성공에 있어,
그가 대중과 함께 즐기려 이렇게 험난한 길을 걸었던 건 더더욱 아닙니다. 그건 그의 인생을 믿고 보살펴 준 최고의 모티베이터 ‘아내’라는 존재를 위해서였죠.


과연 나에게 있어서 지금까지의 모티베이터들과 그리고 그러한 모티베이팅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것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뼈를 깎는 자성까지는 아니지만, 저에게 가장 부족한 건 모티베이팅까지는 잘되는데, 열정을 불사르는 의지가 많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끝으로 저자가 자신의 비전이라고 말했던 한 구절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할 수 없어도 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다. 우선 할 수 있다고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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