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의 흥행몰이가 심상치 않단다.
그저 감독의 전작에 걸맞는 연출과 함께, 3D를 무기로 한 외계 괴물 스토리정도로 생각했던 나로서는 그저 의외였다. 아이맥스 영화관과 같이 3D로 상영이 가능한 곳의 경우, 웃돈을 얹은 암표까지 성행한다는 보도까지 접하고 나니, 점점 보고 싶어졌다. 솔직히, 'CG만으로 성공한 영화구나'정도로 생각했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메시지가 분명해야 한다.
내겐 몹쓸 버릇이 하나있다. 좋게 말하면, 다른 사람의 의중를 먼저 파악하려 애쓰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일단은 상대방의 의도를 의심하면서 되짚어보곤 한다.

그냥 있는 그대로 스토리만 보면 될 것을
자꾸 감독/저자의 의도를 꽤뚫어 보려고 한다. 더불어 그들의 의도했건 안했건 간에, 나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이건 이래서 이렇고, 저건 저래서 저렇다'는 식의 독단적인 결론을 내리기도 한단다.

나만의 메시지를 얻고 싶다고나 할까?
사실, 이런 나의 쓰잘데기 없는 망상은 연애소설이나 공상과학 영화를 볼 때도 지속된다. 덕분에, 와이프는 영화를 볼 때마다 내 입단속을 시키곤 한다. 이유인즉슨, 내가 혼잣말로 중얼거리기 짜증난단다. 그러면 '영화에 집중 좀 하자'며 핀잔을 주기 일쑤다. 자꾸 무언가를 시험하려고 들지말고 있는그대로 받아들이라면서 말이다^^

난, <아바타>의 강력한 메시지에 열광했다.
'니까짓 게, 얼마나 뛰어난 CG로 사람들을 현혹시켰는지 함 보자'라며, 영화를 관람하기 시작했다. 헐리우드에서 화려하게 '돈칠''맛' 좀 보려고 말이다.

외계인과 인간은 우리의 잣대..
이 영화, 중반부터 나를 몰입하게 만들었다. 외계인이라고 하면, 일단 우리에겐 두렵고 무서운 존재로 여겨지며 지금껏 터부시해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바타>에서의 '외계인과 인간'의 관계는 바로 그 반대라는 게 흥미로웠다. 순수한 외계인들의 공동체를, '하늘에서 내려온 사악한 인간'이 짖밟으려 한다는 발상 그 자체만으로도, 영화는 몰입하기에 충분했다.

그건, 다름아닌 얼마 전에 보았던
<아마존 눈물>과 오버랩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아마존의 눈물>의 원주민과 <아바타>의 원주민에겐, 그저 우리가 탐욕스러운 존재이자 이방의 외계인일 뿐!

아마존의 눈물을 보았는가?
자연을 숭배하며, 자연에 고마워 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며, 자연에 욕심을 부리지도 않을 뿐더러, 언제나 필요한 만큼만 자연의 일부분을 얻어서 생활해 나갈 뿐이다.
 

만물과 더불어 살고, 동물을 우리에 가두거나 사육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정말 '인간의 사악한 탐욕'이 미치지 않는 이 순간에도, 그들은 어디에선가 행복하게 자족하며 살아갈 뿐이다.

그런 그들에게 시련이..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는 내내, 같은 하늘아래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너무나도 다른 그들의 순수한 사고방식에 자괴감이 들곤 했다. 더불어, 그들의 존재가 세상에 밝혀지지 않고 살아가는 게,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 반대편의 침략자'에겐, 그저 먹잇감에 불과한 '나약한 존재'
불도저가 그들의 보금자리를 밀어버리고, 작물을 경작키 위해 초원을 불태우며, 예전의 신대륙의 인디언들이 쫓겨나가듯 그들은 또 다시 '인간의 매서운 손길'이 닿지 않은 곳으로 사라져야만 하는 운명을 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점차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인간의 세속세계에 동화되게 된다면, 더 이상 '순수했던 외계인'의 모습은 없어지겠지...

너무나 때묻지 않은 그 순수함이 고귀할 뿐..
자본주의의 개발논리가 퍼져 자신의 터전을 잃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저 우리를 원망하기 보다,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이며 더 깊숙히 들어갈 뿐이다. 당시, MBC 촬영팀의 모든 소품이 그들에겐 신비한 놀이기구가 되었듯, 지구 저 반대편에는 아직도 때묻지않은 영혼의 순수함이 살고 있었다. 아무쪼록, 그 험난한 오지에서 극도의 피로감과 스트레스를 느끼면서 촬영에 임한 스텝진들의 노고에도 무한한 박수를 보내드린다.

우리 안의 또 다른 외계인..
너무나 슬픈 현실이지만, 우린 자연을 지배하며 철저히 우리 중심적으로 살아왔다. 덕분에, 우리와는 다른 유인원이 등장한다면 그게 바로 '외계인'이었던 것이다. 허나, 지구 안<아마존의 눈물>과 지구 밖<아바타>에 등장하는 원주민들 눈에는 그저 우리가 하늘에서 내려온 신비한 외계인의 존재였다.

자신들을 위협하거나 죽이려고 온 침략자라기 보다.. 
그저 자연의 일부분으로 우리와 공생하는 유인원으로 받아 들인다는 점에서, 사악한 인간과는 상반된 시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성한 영토에서 자연과 동물과 부족끼리 공생하는 그들에겐, '침략'이란 단어의 의미는 도저히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감독의 명철한 메시지가 가슴에 팍~ 팍~
<자본주의 침략자의 본성과 그 폐해>
를 외계인을 통해, 우회적으로 알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 우리내는 이 작은 행성내에서도 서로를 불신하며 많은 전쟁을 벌여왔고, 지금도 끊임없는 분쟁으로 '제 배 채우기'에 급급한 씁쓸한 현실에 살고 있다. 그 뿐만이랴.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들의 터전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 '총성없는 전쟁'을 통해, 자원을 고갈하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의 무한한 상상력의 나래일 수도 있겠지만, 감독 또한 화려한 영상미 뒤의 <인간의 야욕>을 보여주려 하였음이 분명하다.

뛰어난 과학기술의 총합체로 중무장한 인간이라 한들,
자연과 교감하는 원주민들과 동물들의 협공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감독은 중무장한 군인들의 '총/칼의 위대함'보다, 순수한 원주민의 '모든 생명체와의 더불어사는 삶'의 손을 들어주며 이 영화는 끝마친다. 장장 3시간 여의, 인간의 배를 채우기 위한 우주침략 전쟁은 그렇게 '자연과의 공존'보다 값진 것이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남겨준 것이다.

아쉬운 점도 있단다^^
가히, 미래사회답게 '생물학분야에서는 엄청나게 진보한 기술력'을 선보인 반면에, 군인들의 모습은 지금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인간의 신경세포와 연계한 아바타가 등장하는 시대 배경에서, 여전히 총을 들고 시가지 전투를 벌이는 군대의 모습이 교차되는 게 아이러니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속편이 나온다면, 미래시대에 걸맞는 최첨단 군인의 모습 또한 기대하고 싶다^^
▶[관련글 보기]9/11/25 - [200자 만평] - 월E에 비친 미래의 쇼핑사회?

*덧붙임 :
월-E도 꼭 보시길~
'월-E'라는 애니메이션 또한, 최근에 헐리우드 작품 중에, '물질만능에 의존하는 우둔한 인간'이라는 메시지를 전해준 괜찮은 영화였다.

무엇보다, 미래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지만, 안팎으로 재기되는 '생태계의 위기설'에 대한 많은 경고가 이어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저, 영화감독들의 말장난이라고 받아들이기 보다, '지구의 슬픈 자화상'으로 받아들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2009/13/31
Posted by 언어의 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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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네프 2009.12.31 23: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고나오면서들었던생각은 모든문제는인간으로부터시작된다 아마존도빨리봐야겠군오

  2. 네프 2009.12.31 23: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고나오면서들었던생각은 모든문제는인간으로부터시작된다 아마존도빨리봐야겠군오

  3. 케이엠 2010.01.01 01: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아바타를 보는 내내 아마존의 눈물에서 불타고 있는 아마존과 원주민들의 삶이 오버랩되었었는데...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4. Favicon of http:// aa.com BlogIcon 2010.01.01 04: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아바타를 보고왔습니다
    안보신 분들이 이 블로그를 보시면 살짝 스포일 당한 느낌이겠는데요?
    저는 아바타를 보면서 미국과 원주민들의 관계가 생각났습니다 무기를 앞세워 원주민들을 무자비로 파괴히던 그들.
    캐나다에서 사는데 영화가 끝나니 박수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ㅋㅋ 인상깊은 영화임에는 틀림없는듯해요

  5. Favicon of http://nae0a.com BlogIcon 내영아 2010.01.01 10: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아바타 보고 인디언과 백인들의 역사가 떠오르더라구요.
    그리고 그 한참전의 우리 원래의 인간들에게도 저렇게 서로 교류하며
    살았을 신이 있었을텐데...라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인디언도 인간이니 같은 인간인 우리안에도 그런 신성이 존재할텐데 말이죠 ㅋ

  6. Favicon of http://nae0a.tistory.com BlogIcon 내영아 2010.01.31 19: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 트랙백 한 개 걸께요 ^&^


인간의 두 얼굴 - 10점
김지승 외 지음/지식채널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기질인가 상황인가?
EBS 상황 심리 프로젝트,
‘상황의 힘’을 밝히다.

월요일..
TV시청의 프라임 시간대라 불리우는 10시~11시 사이에, 저희 부부는 '꽃보다 남자'를 시청해왔습죠.(이미 종영한 마당에, 지금은 여기저기 채널을 돌려보는 노마드입니다^^) 

지난주의 '지식채널e'에 이어
'EBS의 다큐멘터리 인간의 두 얼굴'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연히도 제 맘에 쏙~ 드는 심리다큐 프로그램이었는데요. 1분 남짓 보는동안, 순간 움찔했습니다.
2009/04/17 - [2.0 마인드^^] - 억울한 병원비, 두 번 우는 환자들

<인간의 두 얼굴>은, 450명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심리 실험과 실제 사건을 통해 상황과 인간, 이 둘의 관계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시도하여 놀라운 결과를 끌어냈다. 특히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2007년 버지니아공대 조승희 사건, 군대 및 체대생들의 집단 폭력 등에 상황심리로 접근함으로써 개개인의 윤리에만 호소해왔던 기존의 방식을 뒤집고 인간의 행동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출판사 서평 中>

그간, 삶에 찌들어 살다보니
한동안 제 관심사 밖으로 멀어져 있었던 '인간본성'을 다룬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인식하곤, 순식간에 저의 아련한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더군요^^ 직딩이 되어서도, 철학을 대충~ 전공한 저는 나름 '인문학도'라며, 실용주의 학파가 대세를 이루는 '살벌한 전장'에서 꿋꿋히 '인문학의 지조'를 지켜나가려 노력했습니다^^

그리곤 결국,
TV리모콘을 움켜진 채, 와이프의 압박(?)에도 굴하지않고, 프로그램에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철학 그 안의 심리학, 더 구체적으로는 인간의 본질에 적을 두었다고나 할까?
인문학 중에서도, 어설프게나마, 저의 관심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창시절에는 주로 현대정신 분석학의 프로이트를 잇는 라캉에 매료된 적이 있었고, 동양철학 중에서는 다들 좋아라하는 노자 선생님의 '도덕경'에 관심을 두고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언제나 심리학 관련도서나 인간 본성에 관련한 서적들을 좋아했고, 혼자만의 '개똥철학'에 갇혀서, 나름대로 주체적인 사고를 한답시고 꼴깝(?)을 떤 적도 있답니다^^

한 때는 머리를 어깨 너머로 기르곤,
'인간 본성'의 이면에 대해 고민하기도 하고, 단과대학 옥상에 올라가서 '공통주제'를 가지고, 씁쓸한 술잔을 기울던 때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혼자서 '집단심리'를 상당히 경계했는데요. '종교'나 이데올로기에서 파생되는 '집체주의'의 부정적 영향이 그 단적인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배척하고, '절대적'인 존재에 의지한다는 명분 하에, 자행되는 세속적인 비리나 제도에 대해 많은 회의를 느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오직 '인간' 스스로의 '주체적 마인드 함양'만이 살 길이다^^
이렇게 외치곤, 다른 선배들이 유학을 떠나가거나, 더 많은 공부를 위해 학교에 남아있을 때, 저는 '현실주의'에 입각하여, 이렇게 '사회의 길'에 접어들었습니다. 오직, 이 세상 만이 제게 '거친 해답'을 줄 수 있다면서 말이죠^^

쓸데없는 사색을 좋아하던 아이..
사춘기 시절, 쓸데없는 생각과 부질없는 잡념으로 가득 찬 한 소년은 '왜 인간은 죽어야 하나'에 대해, 한없이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때론 '영생'을 추구하며, 죽음을 기어코 부정하려고 했던 적도 있죠. 더욱이 고생하시는 홀어머니를 보며 자라다보니, 남들처럼 '이상세계'에서 '신'에 종속되어 '답'을 찾기 보다는, 스스로 '삶의 지혜'를 터득하려 했던 성향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여러 멘토들로 부터 관련 답을 좇으려 강연회도 참석하였고, 나만의 시각(주관)을 갖추기 위해 많이 애써왔다고 생각합니다^^

※관련 포스트 보기^^
1. X와 Y가 다른 생각을 하는 이유?
2. 여러분들은 지금 부자가 아니신가요?
3. 책내음
4. 그는 내게 사람을 보라고 했습니다.
5. 떨쳐버릴 수 없었다. 너와 나의 불완전함

이번 다큐는..
제가 그간 고민해왔던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고민'이라든지 '인간의 성향을 두고, 성선설이냐 성악설이냐', 혹은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남성이 우월하냐 여성이 우월하냐'와 같이 인간의 본원적인 부분을 넘어서서, '환경'이라는 새로운 요인을 통해 또 다른 '자아의 세계'를 열어주었다는 데에 있습니다.

환경이 사람을 지배한다!
인간의 극한 상황 속에서, 어떤 행동을 보이느냐는 그 환경에 따라 제각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나름 충격적이었습니다. 물론, 인간이 환경을 넘어서는 부분에 대한 언급도 있지만, 무엇보다 '환경'이 변함에 따라, '인간의 얄미운 카멜레온 습성'은 놀라운 변화(?)를 일으켰습죠. 가령, 그간 사회에서 평가했던 '착한사람'과 '나쁜사람'이란 '인간의 잣대'는 철저히 무시한 채, 순식간에 다른 환경적 요인(역할게임, 3의 법칙)에 의해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몇 가지 임상실험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인간과 상황은 동전의 양면이다.
<인간의 두 얼굴>이라는 프로그램 덕분에, '착함'과 '나쁨'에 영향을 주는 '인간의 정신적 기재'를 뛰어넘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데에서, 꽤나 흥미로웠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더욱이 '환경적 요인'의 재조명이란 점에서, 제게 새로운 가르침을 전해 주었구요.

LG CYON | LP 3400 | 1/-2147483648sec | Flash did not fire | 2006:01:24 09:02:46

더불어, 현대 범죄 심리학에서도 '환경'이란 요인은 절대 무시할 수가 없죠.

오늘의 미네르바의 법정판결에서와 같이,  '나쁜행동이다'는 주변의 환경적 요인을 충분히 감안하여 판단되어 져야 할 소지가 있다는 것을 법원이 존중해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가 영화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미국의 배심원제에서도 바라볼 수 있듯이, 그들은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과 함께, 왜 그랬는지에 대한 '환경'또한 중요시 여긴다는 것이 새삼스러워지는 이뉴는 뭘까요?

아마도 오늘 잠자리에 들면서, 이 '바다풍경'을 떠올리며, 곰곰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2009/04/21
Posted by 언어의 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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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의 기능1]

나는 잠시 나를 돌아본다.. 어쩌면 나는 나의 본질적인 존재를 보여주기보다, 사회생활에 적당한 모습으로 살아온 시간이 더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덕분에, 나의 불완전한 자아는 지금의 현실에 만족치 못하고, 허상을 추구하는 기재가 왕성하게 작용하고 있다. 어쩔수 없다는 핑계로, 사회적인 동물의 주류가 되고자, 순수한 모습은 감추고 가식적인 일상의 연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세상 살이가 정말 쉽지 않기에
나는 그저 세상이라는 다양한 퍼즐에 한번은 움츠리기도, 그리고 한번은 각을 세우며 '나의 자아'를 맞춰가며 살아왔다.

그래도 가끔..
정말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하며, 그리고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아 확신이 뚜렷한 사람들에 대하여 부러운 마음이 작용했다는 것은 분명 내 마음 속에는 아직 나에 대한 서글픈 미련이 존재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물론, 대리 만족으로 끝나겠지만서도..


화이트 헤드의 이성의 기능이라는 책을 적용해 보면,

내가 이렇게 생각해 온 것들이, 어쩌면 정반합의 논리 속에, 합리화 될 수 있겠구나라는 용기를 가졌다.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무의식 속에서, 이미 나의 불완전한 자아는 이성과 그 반대를 왔다갔다하며 계속된 타협안을 찾고 있는 과정으로 풀이되었기 때문이다.

몹쓸 나의 발전적 모습을 기대하며^^
지금도 이성은 끊임없이 작용 해나가는 것이며, 나의 사고와 행동 하나 하나가 이미 합의점을 찾았기에 결과적으론 잃게 글로도 옮길 수도 있고, 또 다른 내 안의 모습을 준비 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

나의 순수한 모습을 기리며..

나의 순수한 모습을 기리며..

가끔 난..
갑자기 화가 폭발해 나도 모르게 주체할 수 없어 낭패본 적도 적지않아 있다.

그럼, 이 또한 '나의 이성이 오히려 화를 내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신호를 보낸 것일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왜냐하면 가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 또한, 나의 자아 발전에 분명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의 행위는 '이성의 작용'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당화 될 수 있을까? 
나는 불완전하다. 그리고 나에게는 동물적인 본능이 때론 앞선다. 어쩌면 내 안의 또 다른 '동물적 모습'은 분명 비이성적인 존재이다. 즉, 이성의 작용이 우월하다면, 분명 합리적 모습만이 나를 이끌어 줘야 하건만, 솔직히, 나는 절대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조차 인지하고 있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불완전한 존재일 뿐!
아인슈타인의 명언처럼, 난 99%의 노력과 1%의 영감에 의해 움직이는 둔재일 뿐이다. 이렇게 불완전한 모습덕택에, 끊임없이 상향식의 좇아간 것이라고 믿는다.

이 책을 통해,
한가지 깨달은 바는 분명하다. 앞으로도, 무결점의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것을 꿈꾸기 보다, 끝까지 미완성에서 나를 성찰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을 하며, 이 글을 맺는다.

Posted by 언어의 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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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대로 스토리텔링하는 공간>블로그 이름이 시니컬하죠^^ 왜 젓깔이냐 굽쇼? 비린내나는 젓깔이 내포하는 풍자적 뉘앙스(조까)를 토대로, 1人 대안세력으로서 사회적 담론을 함께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자~ 그럼, 젓깔닷컴이 푹~삭힌 진득한 이야기 속으로 빠져 보실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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