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4/19 - [1+1 = ?] - 청첩장

오늘이 어버이날이라고,

싸이가 콘서트 현장에서 불렀던 '아버지'라는 음원을 무료로 공개했다는군요. 당시, '흠뻑쇼' 현장에서, 저도 함께 목청껏 따라 불렀던 곡이었는데, 오래간만에 흥얼거리며 듣다보니, 물 뿌리고, 목청이 떠나가던 그때의 여운(?)이 느껴지는군요^^

 

노래를 듣다가,

문득 '아버지'란 글자 석자를 떠올리게 됩니다. 싸이의 노랫말에서 느껴지듯, 슈퍼맨같은 그 위엄한 당신은 사회에선 경쟁에 치이고, 가정에선 외롭고 고독한 존재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아버지들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은 어버이날이라고 하던데..

어느덧, 제 나이가 삼십대 중반이 되었고, 부모님들은 환갑을 맞이하는 때에, 제게 '부모님'이란 존재는 어떤 것일까.. 어쩌다 한번 통화하고도, 무뚝뚝한 언변으로 1분도 채 안되어 끊게 되는 어색함이 지금 저의 현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없으면 못살 것 같은 10대 때의 부모님..

한없이 소중하게만 느껴졌던 20대의 부모님..

그리고 지금은 왠지 불효를 하는 것 같고, 멀고도 가깝게 느껴지는 30대의 부모님..

 

왜 MMS가 잘 안올라간담...
왜 MMS가 잘 안올라간담... by neosigma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어느덧, 성년이 되어,

위대한 독립을 이뤄 낸 자식 녀석은 그간 스스로 잘난 맛으로 살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저, 그들의 사회적 조건과 금전적 지위가 이 시대의 성공한 부모로 여겨지는 씁쓸한 현실에서, 자식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아직도 홀로 열심히 살아가시는 '자랑스러운 어머니'를 떠올립니다.

 

속초에 살고 계시는 정여사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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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아버지와 사별하신지 오래 된 어머니에게 재혼 결혼정보업체에 가입을 권유하였다. 내가 직접 나서야 하는 것도 있지만, 어머니께서 부담을 가지실까봐, 결혼정보시스템을 통한 자연스러운 만남을 유도하고자, 상담을 받아보시게끔 할 요량이었다.

어머니 명의로 몰래 가입을 하고,
상담 한번 받아 보시게끔 일부러 말씀을 드리지 않았던 나.. 일이 좋게 풀리면, 돈 좀 투자해서 효도한번 하겠다는 기대와는 달리,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오더니,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했냐며 꾸지람을 듣게 되었다.

커플매니저라는 사람..
다짜고짜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결혼성사에 따른 가입 명목으로 무조건 돈부터 내라는 식의 요구를 했고, 회원등급에 따라 많게는 천만원에 가까운 금액을 내면 좋은 사람을 소개받을 수 있다는 설명에 많이 당혹해 하셨다고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PanTech | IM-U160L

재혼을 하기에 앞서
신중히 가입상담을 받는 첫번째 접점에서, 최소한 고객의 입장에서 성의가 보였다면 다짜고짜 돈얘기는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돈만 내면 다된다는 식의 결혼관을 내비치는 커플매니저를 믿고, 어떻게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준다는 것인지 실로 불신만 쌓였고, 이내 어머니에게 미안한 맘이 들었다.
 
나도 결혼한지 얼마 안된
신혼이지만, 주변에서 성혼업체들의 피해는 간간히 들어오긴 했었다. 물론 잘된 사례들도 무수히 많다.

다만.. 애들 장난마냥.. 
기분에따라 만나고 안되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끝낼 수도 있는 것과는 달리..윤리적으로 더욱더 깊게 들여다 볼 재혼시장마져, 똑같은 잣대를 적용한다는 것은 문제가 많다--

돈을 낸 금액대별로, 남자들을 만날 수 있다는 그곳! 
등급별로 돈을 내는 순간, 돈많은 순서대로 결혼을 할 수 밖에 없다는 환경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고 사람을 돈으로 평가하며 짝짓기를 할 수 밖에 없는 풍토를 우리는 묵묵히 받아들이게 되는 환경을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물론
된장녀, 된장남과 같은 사회적풍토 또한 마찬가지임에 하나의 사회적현상을 나혼자 문제인 것마냥 제기한다해도 달라질 건 없다.


아무리, 돈만 있으면 다된다고 하지만
'인륜지대사'라는 결혼마져..그리고 한번 실패한 결혼을 만회하려는 재혼을 성사시켜주는 업체의 행태에 쓰디쓴 썩소를 보낼 뿐이다.


사랑보다는 조건이 우선시되는
'초혼'의 결혼정보업체의 기사를 보고, 한번의 실패를 맛 보았기에 더욱더 큰 상처가 될 소지가 있는 '재혼'의 대상자들에겐 씻을 수 없는 아픔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주었으면 한다.


가뜩이나 폐쇄적인 사회구조 덕분에 재혼이 환영받지 못하는 마당에,
재혼전문 결혼정보업체였다면, 조금이나마 진중한 사업접근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누구나 다 그렇게 한다는 논리보다는 한번쯤 신중하게 그들의 아픔을 공유하며 접근을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사회가
아무리 조건을 우선시하고 살다가도 쉽게 갈라서는 풍토라지만, 아직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사람다운 뜨거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효도 한번 하려다가 괜시리 어머니에게 실망만 안겨드린 이번일에 대해, 이 사회에 최소한의 "사람다움"을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남긴다.. 2007/09/08

Posted by 언어의 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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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가족이란..
와이프, 어머니, 여동생.. 그리고~~ 장인어른..장모님..처남을 포함해서, 모두 족히 6명정도이다.

솔직히 가족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그리고 앞으로도 보듬어 나갈 수 있는 가족이란 굴레를 따져보니, 위의 사람들이 그 안에 속한다.

물론, 친가/외가의 3대를 중심으로
지금도 친인척들과 가끔 교류를 하면서 지내곤 한다. 허나 나의 이기적인 생각으론, 4촌의 관계를 둔 인연들과도 요즘은 왕래가 뜸하다.



결혼식도 못 보고, 6년 만에 본 사촌누이

결혼식도 못 보고, 6년 만에 본 사촌누이

왜 그럴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친가는 아버님이 돌아가시면서 조금씩 각자가 살기 바쁘다보니, 마음은 한결같으나 자주 보기가 힘들었다는 게 핑계아닌 핑계다.

외가는 서로 잘난 덕에,
그리고 복잡한 문제로 형제들간에 여전히 마음속에 상처가 남아 집안의 경조사와 같은 대소사를 포함한 할아버지 제삿날과 같은 경우에만 보곤 한다.



어렸을 적엔 잘 몰랐던 친척들간의 관계 정립이,

성인이 되면서 명확해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피가 섞인 친척들이라고 하지만, 때론 남보다 못할 때가 많다는 생각을 자주하며, 가족공동체를 부정하곤 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생전에 계셨을 때는
누군가 중재를 해주는 매개체가 있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형제들간의 평등한 관계 속에, 자연스럽게 사촌들끼리도 친하게 지낼 수 있었는데, 어른들이 돈문제로 멀어지다보니, 나와 같은 촌수의 친척들도 세월이 지나 하나, 둘씩 머리가 굵어지면서 서먹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는 순수히 나의 경험을 토대로 한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으로, 지금도 명절이면, 3대가 모여 화목하게 지내는 구성원들이 대다수일꺼라 믿는다.)

그래서 늘 어머니는
형제들끼리 소원해진 것을 두고, 우리에게 짐짓 부끄러워 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덕분에 나와 내동생은 우리라도 저렇게 지내지말자며 매번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덕분에, 내가 정의한 '가족'이란
어머니와 여동생 뿐이라며, 아둥바둥 살아왔다. 요즘은 결혼한 덕에 와이프가 첫번째가 되었다는 것 외에는 똑같다. 즉, 인연이라는 것..단지 피가 진해서가 아닌, 내가 어떻게 그들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피는 안섞이더라도, 더욱더 가깝게 지낼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그렇듯이 말이다..

그런 내가 그간 잊고 있던
가족간의 뗄 수 없는 인연에 대해 반성한 적이 있다. 그렇게 모이기 힘들었던, 큰아버지와 큰고모를 모시고, 겨울이 되기 전에, 조상님들 묘소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으레 의무감에 모이던 명절이나 벌초 때와는 달리, 순수히 내가 넌지시 던진 말에, 어르신들이 흔쾌히 따라주셨던 것이다.

모시고 가는 내내,
고모는 아버지의 어린시절 후일담을 들려주셨고, 큰아버지는 그간 바쁜 탓으로 당신이 나서야 할 것을 어린 장조카가 나선 것에 미안해하셨다.

무엇이 중요하진 않다.
그냥 그들과 함께 우리는 한핏줄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 것만으로도 내겐 큰 영광이었다. 서로 경제적으로는 도움은 못주더라도, 늘 맘속으로 위해 준다는 것도 순수한 그들을 통해 알 수 있었고, 왜 그간 교류가 뜸했던 것을 남탓을 했는지 자괴감이 들었다.

어떤 책임감이라는 것도
절대 무시하지 못한다. 난 3대 독자로 태어났기에,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를 관리하고, 친가쪽의 대소사를 챙겨야 한다. 왠지 모를 의무감이겠지만, 난 내가 그렇게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한편으론, 싫던 좋던 간에 이제 우리 세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시점이라는 것도...

과연 지극히 좁아진 가족의 범위가..
앞으로도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겠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며 큰고모가 어제 큰아버지를 보자마자 어줍잖은 웃음으로 반가움을 대신했지만, 그들도 나와 같은 삶을 살아온 것에 반성하며, 조금 넓은 가족의 참된 사랑을 어제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언젠가 또 무슨 연유로..
그나마 남아있는 인연들과도 멀어질 수 있겠지만, 난 지금의 관계에 만족하며, 조금씩 먼저 손을 내밀며 넓혀나가고자 한다. 지금의 2촌에서..3촌으로..그리고 4촌까지^^

Posted by 언어의 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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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된 아들 녀석이,
올해 나이가 쉰넷(54세)의 착한 엄니를 (채용)시장에 내다 팝니다^^


포스팅에 앞서서,
마치 제가 헤드헌팅업무를 진행하는 것 같은 뻔뻔함과 <어머니를 판다?>는 뉘앙스의 경솔함을 무릎쓰고서라도, 이렇게 블로고스피어에 호소하는 것에 대해 양해부탁드립니다.

잃어버린 인생
자식에게 훌륭치않은 부모님이 어디있겠느냐싶지만, 제가 이렇게 팔불출을 자처하는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SAMSUNG TECHWIN CO., LTD | Digimax 370 / Kenox D370 | Portrait | Multi-Segment | 1/60sec | f3.7 | 0EV | 10.7mm | ISO-141 | No Flash | 2006:10:21 12:36:13
낮과 밤이 바뀐 생활,
하다못해 술손님을 접대해야 하는 서비스업의 특성상 그간 정신적으로 많이 피폐한 생활을 하셨습니다. 그저 믿고 의지하는게 있었다면, 자식들 자라는 '낙'하나로 자신의 인생은 포기하시다시피 살아오셨죠^^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아버지에게 낚이셔서, 전공도 제대로 살리시지 못한 채 전업주부 생활을 하셔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살림만 하시며 종교활동에 여념없으시던 곱디 고왔던 분이 갑자기 과부로 전락하면서 인생은 격랑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속초라는 곳..
개인적으로는 희망과 새로운 터전을 제공해 준 고향과도 같은 곳이지만, 어머니에게는 그저 친인척도 없는 낯선 곳에 불과 하였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시점으로, 아마도 어머니에게는 그간의 영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잃어버린 인생 15년'을 저희를 위해 살아오셨습니다. 덕분에 허드렛일을 시작으로, 조그만 노래방까지 차리시게 되면서, 점차 저희 가정은 안정을 되찾아 지금의 위치까지 올 수 있었죠.

그렇게 어머니는
그간 못해주었던 '엄마노릇'에 여념이 없으신 채, 아침, 저녁을 손수 차려주시며 아들내외가 있는 서울집에 올라오셔서 한달가량을 편히 쉬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팝니다!
어느날..어머니께서 매일같이 등산과 사우나를 일삼으며 지내시더니, 제게 다시 일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넌지시 밝히셨더랬습니다. 좀만 더 쉬라는 못난아들의 말을 못 들은 척하시며, 너희 내외 생활하기에도 빠듯한데 엄마 용돈벌이라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하더군요.

50이 넘은 나이에,
현재의 노동시장에 내놓아봤자, 파출부나 식당 소일거리밖에 할 수 없는 걸 알기에 쉽사리 저는 결정 할 수 없었습니다. 어디 아는 지인들을 통해, 홈쇼핑에 등장하는 모델알바나, 일반 대리점의 카운터등 수차례 기별을 넣어놓았지만 그리 쉽지많은 않더군요^^ 내겐 훌륭하고 뛰어나신 분이기에 싸게 팔려나가기를 원치않기에, 이것저것 재다보니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취업시장도 어려운 마당에
재취업시장 더욱이 직장에서 퇴직하는 시점의 어머니 나이로는 어디 명함 내밀 기회조차 녹록치 않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다못해 노동청에서 운영하는 취업알선자리를 가봐도 일용직외에는 '괜찮고 안정적인' 직장은 찾기가 어렵더군요.

저희 어머니~
아직 젊으십니다! 일할 능력도 출중하시고, 무엇하나 빠지지않은 팔방미인이라고 자부합니다. 고학력시대에 뻔할 것 같은 능력은 쓸모가 없다고 하면 할 말은 없습니다. 다만, 그분의 살아오신 열정과 품위에 간주어 바라볼 때, 아직까지 시장에서 필요로 할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막말로, 그냥 여기저기 굴리듯이 어머니를 쓰이게 하고 싶지 않은게 개인적인 바램입니다.

혹시, 호스트맘과 같이 전체적으로 사람들을 다독거리면서, 사업체를 운영하시거나, 식당을 경영하시면서 음식 조리장 혹은 카운터와 같은 위치의 준비된 인력을 원하신다면, 언제든 댓글 남겨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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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epial.net BlogIcon lekker 2008.01.16 15: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머님이 비싼 값에 좋은 곳으로 팔리시길(?).....
    그나저나 저도 좀 팔아 주세요. ;)



2007/06/07 - 어머니와 어머니


어머니께서 내게 메모장 하나를 건네주셨다. 20여년의 세월동안 당신이 남긴 수첩들을 정리한 메모 한장이었다.. 강산이 두번 변한 시간의 족적들이 고스란이 담긴 어머니의 메모 한장을 받아들고는 감회가 새로웠다.

얼마 전, 사업을 정리하신 어머니..
밤, 낮이 바뀌어 생활하신지도, 10여년이 훌쩍 지났다. 몸은 몸대로, 정신은 정신대로 지치신 당신은 그동안 못다한 아들, 딸 뒷바라지를 하겠노라고 곧장 서울집에 올라오셨죠.


퇴근하고 집에 오시는 길이
마냥 즐거웠던 적이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 그간 낯선 타향에서 어머니가 해주시는 저녁밥을 매일 먹을 수 있었으면 하는 소박한 꿈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현실이 되다보니 뭐라 표현해야 할런지요..


허나 행복과 불행은 교차한다죠..
얼마안되어, 동생이 캐나다로 떠날 시점이 다가왔습니다. 딸내미를 캐나다로 보내는 당신의 심정엔 많은 번뇌가 담겨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보내는 출국장 앞에서, 강한 당신의 모습을 앞세워 눈물이 글썽한 동생을 다독거려주었지만, 무엇보다 당신이 가장 힘들었을 것입니다.


다 큰 성인이 된 두 자녀와 그리고 며느리..
모두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만큼 당신의 모든 것을 다 주려는 행동거지들이 제눈에 고스란히 보이는 건 왜일까요. 어쩌면 그간 못 베풀어준 사랑을 모두 주려는 당신의 맘에 우리는 또 한번 가슴이 아팠습니다.

'너희들한테 엄마 역할 못한 게, 가장 가슴 아프다'
그렇게 공항 가는 길내내, 동생을 떠나 보내면서 재차 반복했던 당신의 메시지였습니다.

새벽녘에 들어오시더라도,
우리들 아침밥을 해주시곤 잠을 청하는 빡빡한 삶에 익숙한 강한 분이셨습니다. 그런 당신의 속심정을 내비춘 뼈져린 말한마디는 아마도 저나 동생에게 가슴 속 깊이 다가왔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동생을 보내고,
무슨 생각이 나셨는지, 그간 가족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수첩정리를 하셨죠. 탈도 많고, 말도 많았던..그러나 자식들 대학교육을 모두 마치게 해준 노래방도 처분하고, 애지중지 늘 어머니의 사랑을 못 받고 자란 동생을 보내곤, 당신나름대로의 잃어버린 20여년을 정리하시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요?


어머니의 메모를 보곤,
저 또한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잊고 있었던 옛생각에도 잠기어 힘들었던 그때를 회상하기도 했고, 기뻣던 추억 또한 마음 속에 그려 볼 수 있었습니다.


20여 년을 생계에 뛰어드시면서
그간 휴일도 없이 일하신 어머니.. 아들내외와 함께 지내면서도, 뭐가 그리 좌불안석인지 잠시도 쉬지않는 당신..오늘도 집에 들어가면, 따뜻한 저녁 밥상과 저를 기다려줄 당신이 아름답게만 보이는 건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제발..
못난 자식의 굴레에서 벗어나 당신의 인생을 살아가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늘 받기만해놓고서는 지금도 간, 쓸개까지 빼먹으려하는 못난 아들놈이 뭐가 그리 좋으신지요.


당신 뱃속에서 나온 것만으로도 행운인데,
지금껏 저를 잘 보살펴주셔서 행복하고, 이뿐 동생을 낳아줘서 고맙고, 새식구를 딸처럼 생각해줘서 감사합니다. 고놈의 메모가 뭔지, 저는 그간 세월을 떠올리며 많은 생각을 했답니다. 이제 새롭게 맞이하는 30대의 나이에도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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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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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대공개!

1+1 = ? 2007.09.19 12:58

엊그제 어머니가 오셨습니다. 집안어른이 돌아가셔서, 부득이하게 가게문을 닫고 오셨죠. 저희가 결혼전에는 준비때문에 자주 서울에 왔다가시곤 하셨는데, 이번에 신혼집에 오신 것은 처음이었답니다^^

상갓집에 갔다가 밤늦은 시각에 고기도 구워먹고, 밥도 차려먹었습니다. 오랜만에 밥을 해먹어서 그런지 저는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늘 좁아만 보였던 집이 그날따라 환하게 보였습니다. 사람냄새나는 집같이 말입니다. 어머니에게 우리가 잘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끼리 조촐한 잠옷 패션쇼를 어머니앞에서 보였더랬죠.

확대


제가 평소에는 집에서 트렁크 팬츠에 티셔츠를 입곤하는데, 오늘은 특별히 커플 잠옷을 입고 어머니앞에 선을 보였습니다..

어머니께서도 그런 저희들 모습이 아름다우셨는지, 괜시리 옆에 있는 동생에게 사진한장 찍어주라고 하시더군요..그래서 아예 작정을하고 침대에 누워버렸습니다. 동생의 비아냥섞인 눈초리를 뒤로하고, 저희는 꿋꿋이 둘만의 침대에 누워 이렇게 작품으로 탄생시켰습니다.^^

아무쪼록 그다음날 아침에 장사때문에 곧바로 올라가신 어머니지만, 이제 곧 다가올 추석이 있었기에, 맘편히 보내드렸습니다~~

사랑합니다..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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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어머니
8박 9일간의 긴여정의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오늘 회사로 복귀하였습니다.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 책상을 빼겠노라고 엄포를 놓았던 팀장님덕택에
내심 떨었지만 다행히 제 책상을 제자리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물론 산더미같은 서류더미와, 쌓여있는 메일덕택에 하루종일 분주히 보냈지만서도,
이제 내심 한가정의 가정이 되었다는 중압감때문인지, 출근하는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아무쪼록 일본&몰디브&스리랑카로 이어지는 휴양과 모험의 신혼여행일기는 시간이 허락하는데로 남기겠습니다^^

정확히, 6월 4일 17시 한국땅을 밟았습니다.
그리곤 기다렸다는듯이, 빡빡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죠.
그중에서도 장모님과 어머니가 저희를 가장 반겨주신 분들이 아닐까합니다.

도착한 바로 그날,
우리는 신혼집에 들러 한복만 가지고 처갓댁으로 갈 요량이었습니다.
가보니 난잡하게 이삿짐 뭉치가 너지러있었던 집이 말끔히 정리되었고, 전기밥솥에는 찰진밥까지 저희를 기다리고 있더군요..이모든게 장모님이 그간 청소하시고, 준비하신 거라더군요..나중에 처남한테 들었습니다.

암턴, 밥먹고 시시한 얘기보다는 장모님(이제 어머니라 표현하겠습니다)과 속초에 계신 어머니 얘기를 또 하고자합니다.

혹자는 " 넌 결혼해가지고도 맨날 부모님 타령이니?"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제가 부모사랑에 대한 결핍이 있어서인지 암턴 양해바랍니다.

어제 장모님은 옷 정리하느라 밤늦게까지 투덜대는 여친에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다름아닌 제가 결혼 후, 첫출근인만큼, 꼭 아침밥 챙겨주라는 내용이었습죠.
제가봐도 짜증낼만하게, 한시간내에 수십통은 온 것 같습니다.
반찬은 뭘 해주고, 국은 뭘 끊여줘라..

그리곤, 급기야 철야기도를 마치고 새벽 5시에 피곤하신데도 불구하고 저희집에 오셨죠. 얼마나 든든하게 먹고나왔던지, 기운이 펄펄나더군요^^

장모님이라는 분..
저희가 신혼여행으로 장기간 비운 동안에, 신혼살림 도둑들면 안된다고, 처남을 저희집에서 일주일간 있으라고 자신의 집에서 내쫓다 시피 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제가 온다고, 여행사에 전화하셔서, 처남보고 공항까지 배웅나오게 해주셨죠..

그렇게 저를 챙겨주시는 분이십니다. 제가 신앙에 대한 정절과 믿음이 장모님의 기대만큼 따라가지 못해서 늘 미안할 따름이죠..암튼 그런 장모님이, 매일 철야기도에 힘드신 몸을 이끌고, 저희 신혼집에 오셔서, 사위 출근 첫날 만큼은 밥을 챙겨주셔야겠다고, 새벽같이 오신 것입니다.

긴말없이, 전 밥을 아주 맛있게 먹었고, 너무나 감동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전 장모님이 아닌 어머니를 한분 얻은 아주 행복한 사위라고 해야겠죠..

울엄마..(헷깔릴까봐 엄마로 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제가 결혼하기 전날,
이제 아들놈 마누라 생기기전에 마지막으로 손,발톱과 귀지를 파준다며, 저를 옆에 앉히셨습니다. 어찌나 맘이 찡하던지.. 결혼 전날이라는 이슈와 함께, 제게 고이고이 남을 추억이 될 것입니다.

처갓집에서 하루를 묵고 속초로 내려간 그날..엄마는 저와 여친을 보자마자 한없이 끌어않아 주셨습니다. 그리곤, 장모님께서 준비해주신 음식을 가지곤, 아버지 산소로 갔더랬죠.

이제 제사는 안지낼거다..

내심 종교문제로 갈등이 있을까봐 걱정했던 저의 기우를 뒤로한채, 어머니는 여친에게 단호히 장모님의 뜻을 따르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거기서, 순간 저는 여친에게 맘에 담아있던 말을 했습니다. 그간 여친은 아버지 산소에 오면서, 우상숭배문제로 절을 하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신 이상, 더도덜도, 오늘 결혼하고 첫인사하는 자리인만큼, 저와함께 인사를 드리자고 했죠.

여친도 평생을 종교신념에 뜻을 둔 강직한 친구인지라, 실갱이를 했지만, 마지막이라는 설정과 함께, 제뜻을 고맙게도 따라주었습니다. 덕분에 아버지에게 결혼하고 처음 뵙는 자리에서 뿌듯한 인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맛있는 저녁밥을 먹고 집에서 TV를 보던 중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난데없이 '오늘 안방은 너희들이 쓰도록 하라'고 하시는 거였습니다.

의미없게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늘상 오면, 제방의 제가 쓰던 침대가 있고, 그곳에서 자리라고 예상했는데,
어머니가 상징적인 안방을 내어주신다고 하니, 참 뻘쭘하더군요..
그런데도 당신은 주실게 별로 없다는 것에 계속 미안해 하셨습니다.


참..저희가 잘살아주는 것만으로도 이 두분은 그저 행복하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입니다. 우리가 잘사는게 그저 우리 행복하라고 하는 것인데도, 늘 마음쓰기를 자기들보다 저희를 우선시하시는 분들이죠..

늘 피상적인 말이지만, 언제쯤 그분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늘 받기만하면서도, 원망만 하는 저인데도, 자꾸 생각이나고 숙연해지는 건 또 뭔지-_-

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 치부하고 오늘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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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발톱

난꿈을꾼다 2007.05.26 00:51

결혼을 반나절 정도 앞둔 이 시간..
마사지도 받고, 가꿔야 하고.. 하다 못해 잠이라도 푹 자둬서, 신혼 첫날 밤을 보내야하는 것이 새신랑의 자세이다^^

남들이 보면 팔자 편하다고 할 노릇이지만,
결혼을 앞둔 이시점, 지난 일주일을 돌아보면서 인상깊었던 것은.. 바로 내인생에서 그간 천대받고 하찮은 존재였던 '손톱&발톱'에서 시작되었다!

요즘 핑곗 말로,
손/발톱 깎을 정신도 없던 나였기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만족하며 치일피일 미루던 때였다^^

근 10년만인가?
갑자기 나를 위아래로 훑더니 마치, 초등학교의 위생검열 비스무리하게 손,발톱에 시선이 고정되셨다-- 그렇게 나를 옆에두고, 어렸을 적 자신이 그렇셨던 것과 똑같이, 다큰 자식의 밑에서 발톱을 깎아주시는 것이었다.

순간 어렸을적 어머니의 모습을 떠오르기도 했고,
가슴속 한구석이 찡한~~ 그런, 느낌도 오곤했다. 그렇게 밑에서 발톱을 깎아주시고, 내옆에 앉으시더니, 손톱과 거기에 귀지까지 파주시며, 결혼준비하면서 누구보다도 니가 힘들었을 거라며, 위로를 해주셨다.

10년 전의 어머니는
내가 우두커니 옆에서 올려다보는 존재였는데, 어느순간, 이젠 내가 어머니를 내려다 보고 있는 게 왠지 어색했습니다.. 어찌나 시원하던지.. 마치 목욕탕에서 떼를 밀고 나온 기분이었습니다.

어머니가 파준 귀지와 손톱, 발톱은
여느때처럼, 더러운 존재라기 보다는 있는그대로 어머니의 사랑이 묻어나오는 매개체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습니다. 마치 자신의 가치를 백배, 천배 높인 셈이죠^^

이제 아들 녀석은 다 컷다고
새색시에 한눈이 팔려있는데도, 당신에게는 영원한 철부지 아들이겠죠.. 늘 당신의 가르침을 져버리지 않는 그리고 당신곁에서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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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첩장

1+1 = ? 2007.04.19 13:37

청첩장이 도착했습니다.
어제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학교에서 시험공부를 하던 여친과 그녀의 집으로 갔었습니다. 밤늦은 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여친의 할머니께서는 아직 잉크냄새도 빠지지 않은 청첩장 한무더기를 고이고이 접어, 봉투에 넣고 계셨습니다..저희도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할머니 옆에서, 800여장이나 되는 청첩장을 접었습니다.

결혼이 진짜 실감이 되었습니다..
청첩장에 찍힌 나의 이름을 보고있으면서, 이것이 내가 무대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초대장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꼭 들어보세요^^>

청첩장을 접는동안,
할머니는 자신이 혼례를 올리던 그시절에 대해서 후일담을 들려 주셨습니다. 자신의 어릴적 추억인데도 또렷히 기억하시고 있는 할머니의 얼굴에는 기쁜 표정과 한편으론  손녀를 시집보내는게 맘이 찡하시던지 계속 여친에게 시집가서 잘하라는 당부를 놓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자정을 훨씬 넘어
청첩장을 다 접어가는 사이..방안에서 주무시던 예비장인어른이 시장하시다면서 나오셨고, 뒤를 이어 장모님도 잠이 덜깬 상태에서 한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두 어른들 모두,
자신의 이름이 적힌 청첩장을 보시며 연신 흐뭇해하셨답니다. 갑자기 장모님은 자신이 시집갈 때, 받은 예물들을 꺼내어 여친에게 반지도 끼워주고, 목걸이도 채워주시곤..자신의 얼굴엔 환한 미소를 가득 머금으셨습니다.

이거 너 필요하면 하라고..
자기는 이제 필요없으시다며, 여친에게 건내주는 반지와 목걸이를 저와 여친은 한사코 반대를 하며 손수레를 쳤답니다.

장인어른은 각종 모임에 꼬박꼬박 참석하시며,
이미 소문은 다 내신 듯 했습니다. 이젠 청첩장만 돌리면 된다고 하더군요. 그리곤 청첩장을 접는 저희 주위를 계속 맴도셨습니다..한손에는 허기를 달랠 찰떡을 손에 쥐고 계셨습니다^^

그동안...
내가 왜 이렇게 좋은 새식구들을 대할 때.. 마음 한편으로 원망도 하고 불편해했는지..순간 죄송스러웠고 부모님의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단지 종이한장이 온 것 뿐인데..
밤늦은 시간에 온가족이 자다말고 일어나 하나 둘씩 일어나 자리에 앉아 웃음꽃을 펼칠 수 있다는 것에 너무나 흐뭇했습니다.

가뜩이나 못난 사위를 얻게 된 모자람도 뒤로하신 채,
가장 힘든 시기인 저에게 기안죽이게 할려고, 여러가지 배려해주시는 마음이 그대로 보였습니다. 그리곤 시골에 계시는 저의 어머니도 이 청첩장을 보노라면, 마음이 심숭생숭하실거라며, 이번에 내려가서 걱정하시지 않게 하라고 당부의 말씀도 주셨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리 엄마..존경하는 어머니..
청첩장을 들고 가만히 생각해보니..청첩장에 아버지의 이름은 없고 자신의 이름만 적혀있는 것에 대해 허전함을 드러내기보다는 오히려 아들 기죽을까봐 애써 감추시려 하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곤 제일먼저 아들의 청첩장을 들고 아버지의 산소로 가지고 가시겠죠..

'보세요..당신 아들이 결혼합니다. 당신없어도 잘 키워놨으니 걱정말고 편히 쉬세요'
한 켠에서 훔치실 눈물이 아직도 남아있는지 모르겠습니다..그런 어머니의 강인함을 냉정하게 떨쳐낼 수 없었기에..지금의 동생과 제가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이제 결혼을 하며,
어머니와 동생과 멀어지는 그런 느낌이 간혹 들곤 합니다. 안그럴꺼라 다짐해도, 어느정도 그전의 관계에 비해 조금 더 멀어질 것이 확실하기에 미안할 따름입니다. 단지 기우에 그칠거라 내자신을 위로하며, 반대로 우리집에 큰딸이 한명 들어와 식구가 늘었다 좋아하실게 분명하지만, 저만 그런 것일까요?

결혼날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제 마음 한구석은 이상하리만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더 심해집니다. 별것도 아닌 청첩장하나 온 것일 뿐인데,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제모습..

이제 막 진정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인데..마지막 성장통이 저를 끝까지 괴롭히고 있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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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사랑..

난꿈을꾼다 2007.03.05 13:41

어머니가 오늘 속초로 떠나셨다.. 계속된 못난 아들걱정에, 장사도 잠시 접은 채 서울로 올라오신지 나흘만이다..

같이있는 동안에도, 난 술약속과 여친을 만나느라 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거의 어머니와 함께하지 못했다.

언제나.. 자식의 입장에서서, 자신이 가진 것을 몽땅 다 털어서라도 부담을 덜어주려는 어머니의 고뇌는 내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크시다. 그 크신 사랑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도 당신이 떠나는 날까지,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모두 내어주고자 했던 울 어머니..
지금까지 희생한 것도 모자라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자신하는 하나밖에 없는 어머니..

결혼하는 이순간까지, 짐만 않기는 제게 당신은 모든 것을 희생하시려 했습니다.
이렇게 잘 커왔다고 고마워하는 당신께 멋쩍은 웃음으로.. '그럼, 이정도면 아들 잘 컸지?'라고 대답하는 철부지 아들인데도 당신은 그저 내리사랑으로 절 지켜주셨습니다.
이제는 다컸다고 계속 당신의 품에서 벗어나고자, 큰소리치는 아들에게 당신은 인생의 선배로서 늘 겸손한 삶을 살아가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어머니,
당신이 늘 웃는 얼굴로 저를 대하고, 당신만이 모든 희생을 하시려는데도 아직도 아들은 철이 덜 든 것 같습니다. 그저 당연한 당신의 도리로서만 생각할 뿐, 어쩌다 이렇게 당신의 큰사랑에 마음속으로 깨우치는게 전부이니 말입니다.

늘 고된 장사로, 유년기의 저와 동생의 뒷바라지를 제대로 해주시지 못한게 한이 되신다고 말한 당신..그런 말씀을 하는 당신앞에서 저는 차마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건 사춘기시절의 어설픈 방황시기는 있었더라도, 그저 당신이 어린 두남매를 눈물로 키워오신 것을 두눈으로 지켜보며 자라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바르게 자라야겠다고, 꼭 어머니한분만을 바라보며 성공하겠다고 다짐했던 저희 두남매입니다..
 
엊그제, 어머니는 동생에게서 온 문자라며 동생이 씻는사이 제게 보여주셨습니다. '집에 와도 엄마가 늘 이렇게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습죠.

당신은 그러면서 앞으로 우리 세가족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며 속초살림을 정리하고 올라오실 뜻을 내비추셨습니다. 이유인즉슨, 동생은 어린시절부터 어머니의 사랑을 못받고자란지라, 앞으로라도 저희에게 따스한 밥을 챙겨주시고 싶으시다는 것이었죠.

낯선 서울로 올라와, 작은 소일거리와 함께 가족과 함께 살고자하는 당신의 소박한 꿈..정말 거절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자식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동반자를 만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식들 걱정에 밤잠을 설치실 우리 어머니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행히 여친의 가족들도 어느정도 동의한 상태라 문제는 없지만, 제가 제일 걱정스러운 것은 바로 당신입니다. 오면 저와 동생, 그리고 여친의 직장생활과 대학생활로 바쁘기에 온갖 집안 살림을 도맡아서 하실게 뻔한 당신..

이제는 자식덕에 좀 편히 사실 나이이신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모시고 살면서 효도는 못할망정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된 삶이 아닐까 걱정스럽습니다.

갑자기 당신이 오늘 11시차를 타고 간다는 문자를 받은 것 뿐인데, 그리고 분명 출근길에, 오늘 떠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왜 저는 속으로 이렇게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일까요?

그저 안타깝기만 할 뿐입니다. 늘 살얼음을 걷듯 치열한 삶을 살면서도, 정작 가족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해준 것도 그리고 해줄 것도 없는 저입니다. 그런데도 없는데서 마져도 다빼서 주시려는 당신께 늘 짜증만으로 일관했던 못난 아들이 아무 계획없이 결혼한다고 하는데도 당신은 제편이 되어 주셨습니다.

앞으로 당신이 당신만의 삶을 여유롭게 살아가도록 하는게 저의 작은 소망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못난 아들, 딸이지만, 새로운 식구와 함께 당신께 더욱더 잘할 것입니다. 정말 아들하나 잘 뒀다는 당신의 입바른 소리처럼..꼭 행복한 나날만을 살아가실 수 있도록 다짐하고 다짐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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