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두 얼굴 - 10점
김지승 외 지음/지식채널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기질인가 상황인가?
EBS 상황 심리 프로젝트,
‘상황의 힘’을 밝히다.

월요일..
TV시청의 프라임 시간대라 불리우는 10시~11시 사이에, 저희 부부는 '꽃보다 남자'를 시청해왔습죠.(이미 종영한 마당에, 지금은 여기저기 채널을 돌려보는 노마드입니다^^) 

지난주의 '지식채널e'에 이어
'EBS의 다큐멘터리 인간의 두 얼굴'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연히도 제 맘에 쏙~ 드는 심리다큐 프로그램이었는데요. 1분 남짓 보는동안, 순간 움찔했습니다.
2009/04/17 - [2.0 마인드^^] - 억울한 병원비, 두 번 우는 환자들

<인간의 두 얼굴>은, 450명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심리 실험과 실제 사건을 통해 상황과 인간, 이 둘의 관계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시도하여 놀라운 결과를 끌어냈다. 특히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2007년 버지니아공대 조승희 사건, 군대 및 체대생들의 집단 폭력 등에 상황심리로 접근함으로써 개개인의 윤리에만 호소해왔던 기존의 방식을 뒤집고 인간의 행동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출판사 서평 中>

그간, 삶에 찌들어 살다보니
한동안 제 관심사 밖으로 멀어져 있었던 '인간본성'을 다룬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인식하곤, 순식간에 저의 아련한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더군요^^ 직딩이 되어서도, 철학을 대충~ 전공한 저는 나름 '인문학도'라며, 실용주의 학파가 대세를 이루는 '살벌한 전장'에서 꿋꿋히 '인문학의 지조'를 지켜나가려 노력했습니다^^

그리곤 결국,
TV리모콘을 움켜진 채, 와이프의 압박(?)에도 굴하지않고, 프로그램에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철학 그 안의 심리학, 더 구체적으로는 인간의 본질에 적을 두었다고나 할까?
인문학 중에서도, 어설프게나마, 저의 관심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창시절에는 주로 현대정신 분석학의 프로이트를 잇는 라캉에 매료된 적이 있었고, 동양철학 중에서는 다들 좋아라하는 노자 선생님의 '도덕경'에 관심을 두고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언제나 심리학 관련도서나 인간 본성에 관련한 서적들을 좋아했고, 혼자만의 '개똥철학'에 갇혀서, 나름대로 주체적인 사고를 한답시고 꼴깝(?)을 떤 적도 있답니다^^

한 때는 머리를 어깨 너머로 기르곤,
'인간 본성'의 이면에 대해 고민하기도 하고, 단과대학 옥상에 올라가서 '공통주제'를 가지고, 씁쓸한 술잔을 기울던 때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혼자서 '집단심리'를 상당히 경계했는데요. '종교'나 이데올로기에서 파생되는 '집체주의'의 부정적 영향이 그 단적인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배척하고, '절대적'인 존재에 의지한다는 명분 하에, 자행되는 세속적인 비리나 제도에 대해 많은 회의를 느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오직 '인간' 스스로의 '주체적 마인드 함양'만이 살 길이다^^
이렇게 외치곤, 다른 선배들이 유학을 떠나가거나, 더 많은 공부를 위해 학교에 남아있을 때, 저는 '현실주의'에 입각하여, 이렇게 '사회의 길'에 접어들었습니다. 오직, 이 세상 만이 제게 '거친 해답'을 줄 수 있다면서 말이죠^^

쓸데없는 사색을 좋아하던 아이..
사춘기 시절, 쓸데없는 생각과 부질없는 잡념으로 가득 찬 한 소년은 '왜 인간은 죽어야 하나'에 대해, 한없이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때론 '영생'을 추구하며, 죽음을 기어코 부정하려고 했던 적도 있죠. 더욱이 고생하시는 홀어머니를 보며 자라다보니, 남들처럼 '이상세계'에서 '신'에 종속되어 '답'을 찾기 보다는, 스스로 '삶의 지혜'를 터득하려 했던 성향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여러 멘토들로 부터 관련 답을 좇으려 강연회도 참석하였고, 나만의 시각(주관)을 갖추기 위해 많이 애써왔다고 생각합니다^^

※관련 포스트 보기^^
1. X와 Y가 다른 생각을 하는 이유?
2. 여러분들은 지금 부자가 아니신가요?
3. 책내음
4. 그는 내게 사람을 보라고 했습니다.
5. 떨쳐버릴 수 없었다. 너와 나의 불완전함

이번 다큐는..
제가 그간 고민해왔던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고민'이라든지 '인간의 성향을 두고, 성선설이냐 성악설이냐', 혹은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남성이 우월하냐 여성이 우월하냐'와 같이 인간의 본원적인 부분을 넘어서서, '환경'이라는 새로운 요인을 통해 또 다른 '자아의 세계'를 열어주었다는 데에 있습니다.

환경이 사람을 지배한다!
인간의 극한 상황 속에서, 어떤 행동을 보이느냐는 그 환경에 따라 제각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나름 충격적이었습니다. 물론, 인간이 환경을 넘어서는 부분에 대한 언급도 있지만, 무엇보다 '환경'이 변함에 따라, '인간의 얄미운 카멜레온 습성'은 놀라운 변화(?)를 일으켰습죠. 가령, 그간 사회에서 평가했던 '착한사람'과 '나쁜사람'이란 '인간의 잣대'는 철저히 무시한 채, 순식간에 다른 환경적 요인(역할게임, 3의 법칙)에 의해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몇 가지 임상실험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인간과 상황은 동전의 양면이다.
<인간의 두 얼굴>이라는 프로그램 덕분에, '착함'과 '나쁨'에 영향을 주는 '인간의 정신적 기재'를 뛰어넘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데에서, 꽤나 흥미로웠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더욱이 '환경적 요인'의 재조명이란 점에서, 제게 새로운 가르침을 전해 주었구요.

LG CYON | LP 3400 | 1/-2147483648sec | Flash did not fire | 2006:01:24 09:02:46

더불어, 현대 범죄 심리학에서도 '환경'이란 요인은 절대 무시할 수가 없죠.

오늘의 미네르바의 법정판결에서와 같이,  '나쁜행동이다'는 주변의 환경적 요인을 충분히 감안하여 판단되어 져야 할 소지가 있다는 것을 법원이 존중해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가 영화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미국의 배심원제에서도 바라볼 수 있듯이, 그들은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과 함께, 왜 그랬는지에 대한 '환경'또한 중요시 여긴다는 것이 새삼스러워지는 이뉴는 뭘까요?

아마도 오늘 잠자리에 들면서, 이 '바다풍경'을 떠올리며, 곰곰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2009/04/21
Posted by 언어의 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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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의 기능1]

나는 잠시 나를 돌아본다.. 어쩌면 나는 나의 본질적인 존재를 보여주기보다, 사회생활에 적당한 모습으로 살아온 시간이 더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덕분에, 나의 불완전한 자아는 지금의 현실에 만족치 못하고, 허상을 추구하는 기재가 왕성하게 작용하고 있다. 어쩔수 없다는 핑계로, 사회적인 동물의 주류가 되고자, 순수한 모습은 감추고 가식적인 일상의 연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세상 살이가 정말 쉽지 않기에
나는 그저 세상이라는 다양한 퍼즐에 한번은 움츠리기도, 그리고 한번은 각을 세우며 '나의 자아'를 맞춰가며 살아왔다.

그래도 가끔..
정말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하며, 그리고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아 확신이 뚜렷한 사람들에 대하여 부러운 마음이 작용했다는 것은 분명 내 마음 속에는 아직 나에 대한 서글픈 미련이 존재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물론, 대리 만족으로 끝나겠지만서도..


화이트 헤드의 이성의 기능이라는 책을 적용해 보면,

내가 이렇게 생각해 온 것들이, 어쩌면 정반합의 논리 속에, 합리화 될 수 있겠구나라는 용기를 가졌다.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무의식 속에서, 이미 나의 불완전한 자아는 이성과 그 반대를 왔다갔다하며 계속된 타협안을 찾고 있는 과정으로 풀이되었기 때문이다.

몹쓸 나의 발전적 모습을 기대하며^^
지금도 이성은 끊임없이 작용 해나가는 것이며, 나의 사고와 행동 하나 하나가 이미 합의점을 찾았기에 결과적으론 잃게 글로도 옮길 수도 있고, 또 다른 내 안의 모습을 준비 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

나의 순수한 모습을 기리며..

나의 순수한 모습을 기리며..

가끔 난..
갑자기 화가 폭발해 나도 모르게 주체할 수 없어 낭패본 적도 적지않아 있다.

그럼, 이 또한 '나의 이성이 오히려 화를 내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신호를 보낸 것일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왜냐하면 가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 또한, 나의 자아 발전에 분명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의 행위는 '이성의 작용'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당화 될 수 있을까? 
나는 불완전하다. 그리고 나에게는 동물적인 본능이 때론 앞선다. 어쩌면 내 안의 또 다른 '동물적 모습'은 분명 비이성적인 존재이다. 즉, 이성의 작용이 우월하다면, 분명 합리적 모습만이 나를 이끌어 줘야 하건만, 솔직히, 나는 절대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조차 인지하고 있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불완전한 존재일 뿐!
아인슈타인의 명언처럼, 난 99%의 노력과 1%의 영감에 의해 움직이는 둔재일 뿐이다. 이렇게 불완전한 모습덕택에, 끊임없이 상향식의 좇아간 것이라고 믿는다.

이 책을 통해,
한가지 깨달은 바는 분명하다. 앞으로도, 무결점의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것을 꿈꾸기 보다, 끝까지 미완성에서 나를 성찰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을 하며, 이 글을 맺는다.

Posted by 언어의 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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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 그 부정적 의미에 대하여..

오늘은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원천적인 욕망 중에, 바로 '질투'라는 오묘한 심리적 상황을 논하고자 합니다. 왠지 질투라고 하면, 우리가 사는 데 있어서 불필요한 혹은 안 좋은 상황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현대사회에 있어서, TV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불륜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의처증/의부증에서 보듯, '질투'라고 감히 내뱉을 수 있는 용어의 의미는 상당히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의미 일색입니다. 가령,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스토커 현상' 또한 단순히 한 사람의 병리적인 현상으로만 끌어냈기에, 사회적으로 야기될 수 있는 다양한 폐해로서의 피해자 중심의 결과만을 주목할 뿐입니다.

 

출처:동아일보

출처:동아일보

태어나는 순간, 질투는 시작됐다!

저만 그런 것은 아니겠죠? 아마도, 인류의 모두는 질투와 시기라는 감정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 제가 태어날 당시,
모두의 관심을 받고자 울음을 터트리는 만행을 저지른 그 순간부터, 질투의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어머니가 동생을 더 예뻐하는 낌새가 보이면 내게 관심을 보여달라고 울기 시작했고, 그러한 동생을 몰래 때리는 만행까지 저질렀습니다.(덕분에, 어머니에게 잘 보이기 위한 다양한 사회성을 학습할 수 있는 빌미가 제공되었다고 자부합니다)

 

이 뿐인가요?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짝궁과 책상에 줄을 그어놓고서는 내 영역에 대한 표시와 함께, 호시탐탐 노리는 짝궁의 침략(?)에 처절한 응징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사유재산에 대한 학습효과는 또렷했습니다) 중딩 시절엔, 저와 헤어진 첫사랑이 다른 친구와 사귀는 것을 시기하여, 그녀를 비방하기까지 했습니다ㅡ,.(덕분에, 저를 더 우월하게 보이게 하고자, ‘패션에 대한 관심과 동네 옷가게에서의 소비지출에 확실한 공로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고딩 시절엔 말이죠~ 친구녀석들과 대입을 경쟁하게 되면서, 절대 뒤떨어지면 안된다는 질투심이 작용하여, 공부에 매진했던 기억이 납니다.

 

질투는 필요악이다!

위의 사례에서 보듯, 질투는 절대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질투라는 것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될 필수불가결한 욕망입니다. 아마도 질투라는 감정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인류의 탄생조차 예단하기 힘들었을 수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될 유익한 우성인자로서, 질투는 계속 되물림 되어 지금의 인류가 있기까지 많은 긍정적 영향을 주었다는 군요^^

 

좀 더 직접적으로 얘기하면,

지금의 이 글을 쓰는 저라는 존재 또한 조상들의 포괄적인 질투라는 개념의 욕망이(이는 아름다워지고 싶은 마음, 멋진 사람과 결혼하고 싶은 마음, 조건이 좋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은 마음, 배우자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등)존재해 왔기에, 지금의 ''라는 완벽한 인격체가 탄생하는데 있어서, 어떻게든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위험한 열정 질투라는 흥미로운 책을 보노라면,

모든 인류에게 똑같은 적용되는 진화론적인 잣대를 말하기보다, '남성' '여성'의 유전적 차이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관점의 질투에 대해, 흥미롭게 다루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책의 재미있는 전제는 남자라는 동물은 종족을 번식시킬 수 있는 '씨앗'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여성은 그 '씨앗'을 몸에 품고 아이를 잉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데서 시작합니다.

 

남성과 여성은 욕망의 근원부터가 다르다.

가장 근본적인 질투의 시작은 이러한 남성과 여성의 유전적 차이에서 비롯되었답니다. 이유는 남성에게는 자신의 씨앗을 여러 곳에 저장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과 동시에 한 여자에 대한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가 없기에 여성을 질투하기 시작했다는 엉뚱발랄한 논리가 있습니다.(얼마 전에도 진화심리학과 관련한 기사를 접했는데, 10%정도가 다른 아버지의 아이일 수 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반면 여성의 경우,
반드시 자신의 배에서 나온 아이이기에 자신의 핏줄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근원적 차이 때문일까요? 모계중심의 과거 원시사회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또한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진화심리학적 바라본 남성의 성적 질투는 결국 여성을 소유하여 자신의 아이라는 확신이 들 수 있게끔 종속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오늘날의 '11처제'가 안정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이 못난 남성의 경우는 어떤 배신감보다도 성적인 외도를 통한 배신감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까지 한다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끝으로, 세상사의 진리가 원칙에 따라 증명이 안 되는 경우가 있듯,

이러한 논거를 과학적인 분석과 함께 보편화는 시킬 수 있어도,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기에 각각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욕망이라는 녀석을 일관된 형태로 바라본다는 것이 어쩌면 우스울수도 있겠죠. 여러분들도 한번 고민해보시길 바랍니다. 과연 내게는, 어떤 심리적 기재가 우월하게 작용하는지에 대해서 말이죠^^

※덧붙임
오늘은 저희부부 결혼 3주년 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전의 포스팅 중에, 남녀간의 욕망을 다뤘던 부분을 각색하여, 이번 포스팅을 발행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알콩달콩한 새내기 부부의 얘기를 담아가도록 하겠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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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kyseoul.textcube.com BlogIcon 팔랑개비 2010.05.26 12: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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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대로 스토리텔링하는 공간>블로그 이름이 시니컬하죠^^ 왜 젓깔이냐 굽쇼? 비린내나는 젓깔이 내포하는 풍자적 뉘앙스(조까)를 토대로, 1人 대안세력으로서 사회적 담론을 함께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자~ 그럼, 젓깔닷컴이 푹~삭힌 진득한 이야기 속으로 빠져 보실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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