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하면,
떠오르는 추억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니,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추억은 고이고이 접어둔 채, 몇 몇 순간 만을 떠올리려다 보니, 당연할 수도 있습죠^^

그저, 여자들이 지겨워하는
훈련 이나 축구, 내무반 얘기처럼, 몇 몇 소재에 집중적으로 군생활 스토리는 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 중에, '맛스타' 얘기 또한,
절대 빠질 수 없는 소재 중의 하나죠. 저도 전경부대 PX병 출신인데요. 정말, 맛스타와 건빵은 군생활 26개월 동안, 군인들에게 짬밥이외의 최고의 간식이자, 보급품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던 존재입니다.

혹자는 맛스타에 약을 탔다는 둥~

맛스타는 일반 사제품과 다른 저품질의 과실음료라는 둥의 유언비어를 퍼트리기도 했지만, 어디 군인들이 그런 행복한 고민을 할 겨를이 어디이겠습니까? 정말이지, 맛스타건 건빵이건 없어서 못 먹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오늘 조간신문을 보니,
군대문화의 상징과도 같은 '맛스타'라는 브랜드가 영영 사라진다고 합니다. 물론, 저희 때도, 촌스럽다는 이미지가 다수였음에도, 그 향수라는 것은 간직하고픈 게, 솔직한 예비역의 심정입니다.


훈장을 줘도 마땅치 않은 판국에^^
속된 말로, 영원한 별로 칭송받던 맛스타가 이제 예편을 앞두고 있다니, 군생활 내내 함께했던 전우로서도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더욱이, 군대 보급품으로서 명맥을 유지한 기간이, 어느덧 24년째라고 하더군요.

덕분에, 위키피디아에 등재될 정도로..
맛스타는 군대문화를 상징하는 고유명사에 가까웠습니다. 헌데 없어진다니 마냥 섭섭해지더 군요. 아래는 위키피디아에 등재된 맛스타의 정의 내역입니다^^ 그냥 기분이 새록새록하내요~

[맛스타(Mastar)는 군인 공제회 산하, 군장병 급식 지원 업체인 제일 식품 사업소의 등록 상표로 “지구 상에 으뜸가는 제품” 혹은 “이 특별하게 뛰어남”이라는 뜻[1]이다. 대한민국 국군 장병들에게 쥬스 제품이 부식으로 자주 제공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맛스타라고 하면 주로 쥬스 제품을 일컫는 경우가 많다.] 이상 위키피디아 참조 내용

아무쪼록,
별 생각 없이 살다가, 맛스타가 사라진다기에, 어줍잖은 군생활의 추억을 떠올리며 이렇게 몇 자 적고 갑니다^^ PX병으로 생활하며, 이것저것 사재 과자들도 많이 챙겨 먹으며, 점차 맛스타를 멀리하긴 했지만, 영원히 건재할 줄 알았습니다.

이제 곧 '맛스타'는 사라지겠지만,
예비역 맘 한 구석엔, 영원히 군문화의 상징으로 남아있을 것을 상기시키면서, 이 글을 마칩니다.
Posted by 언어의 마술사


댓글을 달아 주세요


나는 철학과 출신이다.
대개가 그렇게 생각하듯, 철학과 출신이라고 하면, '도'를 수양하거나, 철학원같은 곳에 가야하는 줄 알고 있단다.

연관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주 한번  봐달라'
는 주위의 하찮은 시선에 발끈한 적도 적지않았다^^ 

물론 나 또한,
한때는 노자의 사상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덕분에, 2학년 여름방학 때인가에는, 절에 들어가서 한달 동안 공부를 한 적이 있는데, 당시에 토익책과 '도덕경'을 함께 들고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남이섬으로 엠티를 갔을 때, 찍은 사진^^

남이섬으로 엠티를 갔을 때, 찍은 사진^^

군 제대 후,
혈기왕성한 나이인지라, 절밥을 먹으며 묵언수행을 해야겠다는 마음 가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덕분에, 규칙적으로 새벽 5시엔가 일어나서, 대웅전에서 반야심경을 읽으며 108배를 스님이 멈출 때까지 기도수련을 하던 기억도 나고, 통신수단이 전무한 강원도 양양의 산기슭인지라 편지를 부치러 마을까지 뛰어 내려가던 당시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무언가에 홀렸는지는 모르겠으나,

난 그렇게 2달 여간을 절에서 지내다 내려왔고, 그 이후로도 한참을 사회와의 일탈을 꿈꿨다. 덕분에, 개똥철학에 사로잡혀, 한동안 머리도 자르지않고, 장발을 유지한 적이 있었다.

신입생이 피해다니는
찌질한 복학생 이미지로서, 학생회실에서 먹고자는 기행(?)과 츄리닝 단 벌로 생활하는 그런 패턴을 지속했으니, 뭐, 지금으로선 할 말이 없다^^

대학시절, 인턴생활을 하던 당시에 찰칵^^

대학시절, 인턴생활을 하던 당시에 찰칵^^



난, 변했다!

지금은 전공과는 전혀 생소한 분야에서 소심한 직딩으로 보편적 삶을 살아갈 뿐이다.

튀고 싶지도 않고
뒤쳐지고 싶지도 않은, 그저 가늘고 긴 그런 생황을 영위해 나가고 싶은 바램 뿐이란다^^

간만에,
예전 사진을 보더니
혼자 감성에 빠져 이렇게 몇 자 적고 나간다^^

Posted by 언어의 마술사


댓글을 달아 주세요


오늘은 5월 셋째 월요일이자,
국가에서 지정한 '성년의 날'입니다.  이미 성년이 되었고 성년의 날에 대한 기억이 없기에, 굳이 '오늘과 같은 기념일'에 관심을 둘 처지는 못됩니다^^
 
다만, 당시의 쓰라린 추억을 보듬어 가며, 오늘 성년을 맞이한 분들~ 혹은 성년의 날을 맞이한 선,후배들에게 선물을 주실 분들에게 참고가 될 만한 이야기를 시작코자 합니다.

바야흐로 10여 년 전,
저 또한 성년의 날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새내기 시절이었을 것입니다. 개인 용돈을 조금씩 모아서, 성년의 날을 맞이한 선배들에게, 울며 겨자먹기 심정으로, 장미꼿을 선사한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장미꽃 한 송이 덕분에, 밤새도록 '공짜 술'을 얻어먹었습죠^^ 아마도 이것이, 제가 성년의 날을 좋게 기억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추억이 아닐 듯 싶내요.

그리곤 홀연히 군대에 입대해 버렸습니다.
물론, 누군들 '성년의 날'을 의식하면서까지, 군대에 입대하겠느냐고 묻는다면, 저 또한 할 말은 없습니다. 뭐, 군대에서는 솔직히, 여느 기념일이든 무덤덤하게 지나치는 게, 일상이죠. 우리나라의 가장 큰 명절이라고 할 수 있는, 설과 추석 외에 <생일>까지 챙겨준다면, 그저 무한한 영광을 다 바쳐 국가에 충성 할만한 상황이었다고나 할까요^^

내 기억 속의, 흐릿한 '성년의 날'
덕분에, 군대에서 맞이한 성년의 날에 대한 기억은 솔직히 없을 뿐더러, 그냥 사치였습니다. 그날이 성년의 날이었는지 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할 따름이죠. 다만, 어디선가 들은 건 있어서, '오늘이 내가 성년이 되는 날이구나'정도는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장미 한 송이 조차,  허락되지 않던 살벌한 상황 속에서, 그렇게 저는 쓸쓸히 성년의 날을 맞이 했었답니다.

아마도 대다수의 남자라면,
20대 초반의 나이에, 군대에서 성년의 날을 지나치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고 사료됩니다. 그래서인지 '군대에서 맞이한 성년의 날'에 대한 에피소드 또한 다양하게 접해왔습니다. 제가 아는 지인의 경우, 부대에서 '고참/쫄병' 계급에 상관없이, 성년의 날을 맞이한 같은 나잇대의 병사들을 모아서 행사를 했었는데, 정말 뻘쭘했다더군요.

이유인즉슨, 군대를 일찍 간 병장과 이등병이 함께 같은 나이 임을 증명하는 자리가 되기도 해서인지, 병장입장에서는 몹시 불쾌했던 경험이었답니다^^ 또 한 부대는, 성년의 날을 맞이한 병사들을 위해, 부대장님께서 친히 요구르트를 하사(?)하여, 특식을 맛보는 혜택을 누린 게, 아주 큰 추억이 되었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그렇게 복학을 하고 나서는,
이제는 후배들의 성년의 날을 챙겨야 하는 입장에 놓인 것이 몹시 불쾌했답니다^^ 허나, 저와 같은 성년의 날에 대한 추억을 간직한 남자 복학생들이 많았기에, 쓸쓸하지는 않았죠. 아무쪼록, 20대 초반의 큰 행사였던 '성년의 날'은, 나이가 들면서 제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오늘은 1990년 태생의 여러분들이 주인공인 성년의 날입니다. 성년의 날 하면 향수, 장미, 키스 이 세 가지의 선물이 빠질 수가 없다죠. 물론, 저는 그 어떤 추억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만, 이 세가지의 선물이 모두 탐이 나내요^^ 좀 음탕한 생각을 한다면, 마지막의 키스는 정말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년의 날을 통해 바라 본
키스의 과학에 대해 간략히 언급 코자 합니다. 성년의 날에 연인 간의 키스를 하게 된 것은, 제가 알기로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진다는 하나의 의미로서 시작이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이 날의 키스는 분명 성인으로서 사랑하는 사람들 간의, 하나의 이벤트일 뿐입니다. 더욱이, 과거의 키스를 하게 된 원인을 살펴보면, '사냥을 다녀온 남편이, 아내가 자신 몰래 식량을 축냈는지 확인을 하는 과정'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하니, 지금과는 많이 다른 행태라고 할 수 있겠죠.

유래야 어찌되었 건, 키스는 건강에 좋습니다.
정신건강 뿐만이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많은 과학적 효과가 입증되었답니다. 남녀가 ‘설왕설래(舌往舌來)’하는 동안 이자에서는 인슐린을, 부신에서는 아드레날린을 각각 분비한답니다. 또 핏속에선 백혈구 활동이 활성화돼 면역력이 올라가구요. 이 뿐인가요? 뇌에선 엔도르핀과 엔케팔렌 등 면역기능을 높이고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물질이 나오며,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을 때 배출되는 코티졸이라는 호르몬의 생성도 줄어든다는 군요. 그래서인지, 미국에선 매일 규칙적으로 키스를 즐기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 5년 정도 더 오래 살 뿐 아니라 결근률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사례도 찾을 수 있습니다^^<내용 참조 : 동아사이언스>

출처:동아사이언스

출처:동아사이언스

이외에도,

키스는 다이어트 효과 또한, 있다는 얘기도 있으며, 건강한 사람들 간의 키스는 충치예방 효과 또한 있다더군요^^ 그렇듯, 성년의 날을 통해 바라 본 <키스>라는 것은, 단지 연인 간의 이벤트의 의미를 떠나서도, 많은 과학적 가치가 있답니다.

아주 특별한 성년의 날을 원하는 분들이시라면,
파란 장미와 함께, 연인에게 키스의 과학적 의미를 되새겨 주는 것은 어떨까요? 평생에 한번 있는 성년의 날에, 아마도 아주 특별한 추억이 될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Posted by 언어의 마술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999년 12월 31일
새천년을 맞이하는 밀레니엄 시대에,
온 국민은 환희와 기대감으로 벅차 있었다.

한 세기를 넘어,
천년의 시간을 뛰어 넘어가는 그 순간..

새로운 시대로의 도약을 염원하며, 
모두가 덩달아 신나했던 그 당시를.. 잠시 회고한다.

난 아마도,
그 소중한 순간을 군대에서 맞이하게 되었다지ㅠㅠ

1999년 12월 31일 보신각

새천년을 맞이한다는 1999년의 마지막 밤.. 이날 우린 보신각 앞에서 혼잡경비를 섰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한명의 시민이 종각역에서 압사를 당했다고 나는 기억하고 있다.

내가 기억하는 1999년..
누군가 난세 속에 영웅이 나타난다고 했었지. 허나, 1999년의 12월에는 '밀레니엄 시대로의 도약'보다는 유독 종말론을 외치며, '인류의 위기'를 외치며 국민혼란을 부추기는 종교계의 이단아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기도 했다.

그렇게 12월의 마지막밤이 오고..
난, 군복무 중에 있었다. 수도 서울의 치안을 위해, 나라를 충성하며 시위대와 힘겹게 싸우던 그 당시.. 우리 부대는 당시 밀레니엄 시대를 알리는 <보신각 타종행사>에서 혼잡경비를 맞게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새천년의 희망을 바라보는 그 현장에서, 나 또한 함께 할 수 있음을 기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분대장을 단지 얼마 안되어 소대내에서 짬밥이 좀 되던 나로서는, 혼잡경비를 맞았다기 보다는 시민과 함께 축제를 즐겼다는 것이 아마도 딱 어울리는 표현일 것이다.

종각부터 대학로까지..
9시 광화문 혼잡경비, 12시 종각 타종행사, 새벽 2시 대학로 마로니에 광장의 콘서트 현장까지, 쉴새없이 뛰어다녔지만 그날만큼은 우리 또한 마음이 들뜬 채로,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며 현장을 즐겼었다.(물론, 그날 안타깝께도 종각역에서는 넘쳐나는 인파 속에, 시민 1명이 압사를 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기도 했다.)

'치열하게 20대를 살아보자'

그렇게 나는..
생생한 보신각의 타종 소리를 들으며, 다가 올 십년의 인생에 대한 새로운 다짐을 할 수 있었다.

2009년 12월.. 어느날, 어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눈만 깜짝하면 십년이란 세월이 금방 지나가는 구나.. 벌써 2009년 12월이라니.. 그렇고보니 그 십년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내.. 너가 군대도 다녀오고, 학교 졸업하고, 취업까지 했으니 말이다.. 할아버지/할머니도 돌아가셨고 이제 너까지 결혼한 마당에, 엄마도 60대를 바라보게 되었내.. 옛 어른들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는 것 같아..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세월이 이렇게 빠르구나..

어머니의 말씀이 끝난 뒤로도, 난 그 말씀을 계속해서 곱씹으며 생각했다.
맞다.. 내가 1999년에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다짐을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정말 십년이란 시간이 흘러, 2009년이 되었구나..

십년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십년을 계획하자!
난 정말 당시의 다짐과 같이 치열하게 살아왔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스'다. 나의 이십대는 그 누구보다도 후회없이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지나간 과거, 지금에서 후회해봤자~ 또,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젠, 앞으로의 십년에 대해 난 진지한 성찰과 함께 다짐을 하고자 몇 자 남긴다.
<관련글 보기>2007/12/21 - [20대의 끝자락] - 나의 이십대를 말한다!

2010년! 호랑이가 아닌, 거북이가 달린다!
그렇다. 경인년의 해에, 난 호랑이가 아닌 거북이가 되기로 결심했다. 더 솔직하게 20대의 인생을 동물로 비유하자면, 난 토끼가 앞만보고 달리듯 살아왔다. 뒤도 돌아볼 겨를없이, 소중한 20대를 다 보낸후에야, 비로소 내가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나를 위해, 거북이가 되련다.
겉치레만 신경쓰던 20대였다. 속빈강정마냥, 주변의 시선만 의식하던 나였다. 정작, 자신에 대한 확신은 없었으면서도, 그렇게 다른 사람이 좋다면 좋은 건 줄 알고, 난 내 주위만 맴돌며 살아왔던 것 같다.

이솝우화 <토끼와 거북이>
거북이는 걷는다. 주위를 의식하지 않은 채, 자신의 페이스대로 걷고 걷는다. 반면, 토끼는 뛴다. 허나, 자기 꾀에 넘어가 종국에는 거북이가 레이스에서 승리를 하게되는 결과를 낳게된다.

너 자신을 알라.
언젠가부터, 난 <토끼와 거북이>라는 우화에 등장하는 거북이를 닮고싶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아이러니컬하지만, 내가 살아왔던 20대의 캐릭터(토끼)는 완전히 벗어던지고, 정반대되는 캐릭터(거북이)를 표방하게 된 것이다.

화려한 수식과 언변은 집어치우고~
진짜 나의 참된 자아를 찾아, 조금씩 내 페이스를 찾아가고 싶다. 그동안 학대해왔던 나의 주관을 끄집어내, 허황된 꿈을 좇기 보다는 내 자신을 채워나갈 것이다.

남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한 평생 외길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가 갑자기 생길리 만무하지만, 난 그만 20대의 겉치레 과거는 빨리 잊고 내실있는 진정한 나의 인생을 찾고자 앞으로의 십년을 설계코자 한다.

부디, 거북이처럼 풍파에 흔들리지않고, 심지있는 멋진 인생을 살아가기를^^
'2010년 경인년(庚寅年) 호랑이의 해'
의 너의 다짐이 '2020년 경자년(庚子年)'에 새로운 희망으로 이어지기까지 후회없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자!

                          아자~ 아자~ 홧팅!!!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2.3.4가동 | 보신각터
도움말 Daum 지도
Posted by 언어의 마술사


댓글을 달아 주세요


 헉..지금 예비군 얘기좀 하려고 컴터를 켰는데, 포털뉴스를 잠시보니 군장병 총기사고가 또 터졌군요ㅠㅠ 미국 총기사건관련 동영상이 세간이 말이 많아 오늘 예비군들하고도 많은 얘기를 했는데, 제가 신성한 국방의 의무(정규훈련시간 8시간)를 다하는 동안 우리나라에서도 총기사고가 터지다니.. 그것도 군대에서 말입니다^^ 여파가 좀 클듯 합니다. 사병에 대한 실탄지급문제..나라를 지키는 군장병이라면 대의적으로 당연할텐데, 암튼 앞으로 어떤식으로 결론이 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오늘은 예비군들사이에서 단연 그분(이미 고인이되었기에 신상은 거론하지 않겠습니다)얘기가 화두였습니다.

그분이 미국이 아닌 우리나라의 대학교정에서 그런 행위를 펼쳤다면, 대한민국 예비군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거라는게 대다수였습니다. 어떤 예비군은 한국사람들은 기가 쎄서 엄두도 못낼거라고 하더군요. 미국이니깐 가능했었을거라고 하며 말입니다^^ 그분이 군대를 안갔다와서 그렇다느니, 우리나라에서 그랬다면 그렇게 많은 사상자가 나지 않았을거라며 안타까워 하는 사람등 반응도 가지각색이었죠..

그리고 무슨 그가 첩혈쌍웅의 주윤발이라두 되느냐, 권총두자루로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을 희생시킬 수 있었는지, 총기를 다뤄본 예비역들은 이구동성으로 믿을 수 없다는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아무튼 계속되는 총기사건은 뒤로하고, 오늘 훈련은 어찌나 비가 오던지 세시즈음에 예정보다 일찍 끝마쳐 주었습니다. 원래 동네 근처 동사무소에서 훈련을 받아야하는 예비군 6년차인데, 이상하게 올해부터 본부병력으로 빠졌다며, 예비군 훈련장까지 가야하는 수고를 했습니다.

한 열댓명 됐나..이상하게시리 모두가 예비군 6년차에 같은 동네 거주자라는 이유로 금방 친하게 지냈습니다. 우리는 예비군 훈련받으러 오는 것도..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하면서 씁쓸해했습니다..

특히 저와 같은 직딩들은 이제 직장내에서 훈련핑계대고 빼먹을 일이 빠져서 조금 허전했습니다. 몸은 좀 고달퍼도 서바이벌 게임도 가르쳐주는 예비군 훈련장이 어쩌면 직장생활보다 맘은 편했던 것 같습니다.


ㅋㅋㅋ다행인지 우리를 담당한 정훈장교라며 소개한 대위가 들어와서 함께 놀아 주었는데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군복을입은채로 현역장교를 바로앞에서 대하다보니, 저도 으레 조심스러워지더군요..훈련병시절..저에게 대위는 하늘과도 같은 존재였는데 오늘따라 내 옆에 있는 대위가 상당히 어리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순간..제가 이제 그만큼 나이가 들었나..하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구요.. 주위에도 많은 후배들이 ROTC를 지원하여 지금 현역으로 근무하는 친구들이 꽤있습니다..그들과 여기 내앞에 있는 대위가 전혀 달라보이지 않더라구요.. 이제 내년이면 7,8년차라구 잠깐 교육만 받는 거루 끝나구, 그담부터는 민방위라며 아쉬어하는 우리를 대위친구가 부럽다는 눈빛으로 보았던 거 같습니다.


덕분에 기는 더살구..군대짬밥이 어떻다느니..전역해야 군대의 소중함을 안다느니, 상당히 거만해졌죠..대위라는 친구의 허물없는 행동덕분에, 군대를 막제대한 예비역 복학생마냥 대위를 둘러싸고 군생활의 추억을 꺼내기도 했습니다^^ 대학동아리에서 새내기 하나를 앉혀놓고, 츄리닝 바지의 허름한 복학생선배들이 마치 설교하는 듯한 분위기 말입니다.


아무튼 이제 대위라는 친구도 나보다 어리다는 것이 신선한 충격이었죠..내년부터는 이제 오고싶어도 올 수 없는 예비군만의 치졸한 행동이 그리워질 것 같습니다..이상 예비군훈련을 받고 무사히 귀가한 언어의 마술사였습니다^^

'20대의 끝자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출장근무..  (0) 2007.05.02
너무 지나친거 아냐?  (0) 2007.05.02
예비군도 마지막이다..  (1) 2007.04.20
마음가짐..  (1) 2007.04.17
개구리 올챙이적 망상에 잠기다^^  (0) 2007.04.13
낮술한잔..  (0) 2007.03.15
Posted by 언어의 마술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koreamo.codns.com/blog/Charisma/ BlogIcon 밤하늘 2007.04.20 16: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올해가 마지막 내년부터는 민방위입니다...휴휴...

1

<내맘대로 스토리텔링하는 공간>블로그 이름이 시니컬하죠^^ 왜 젓깔이냐 굽쇼? 비린내나는 젓깔이 내포하는 풍자적 뉘앙스(조까)를 토대로, 1人 대안세력으로서 사회적 담론을 함께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자~ 그럼, 젓깔닷컴이 푹~삭힌 진득한 이야기 속으로 빠져 보실려유?
언어의 마술사

달력

Add to Google
Statistics Graph

태그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