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고3이란?
지옥~~~~~~~~~~

그럼, 고3 시절의 담임선생님은?
지옥 속의 악마!!!!!!!!!!!!!

그렇다..내게도 고3 시절이 있었다..
특히나 담임쌤과의 추억은, 툭하면 사랑의 매(?)로 무식할정도로 맞았던 기억뿐이다.

공교육의 위대함..
당시 우리 동네는 고등학생들을 위한 학원은 만무하고, 제대로 시설이 갖춰진 사교육을 경험하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 고등학교 운동장(저 멀리 설악산)

우리 고등학교 운동장(저 멀리 설악산)

우린 반강제적으로 학교의 꽉 짜여진 시스템 하에 움직이며, 선생님들이 까라면 깔 수밖에 없던 힘없는 존재에 불과했었다.

약 13여년 전..
지방 촌구석의 순진한 고딩들은 지금의 교권하락이 무색할 정도로 선생님을 하늘같이 우러러 보며, 매일같이 사랑의 매로 몸을 단련시켜왔다. 아침 7시까지 등교하여 밤 12시에 야자가 끝날 때까지, 우린 주말도 반납하고 방학도 잊은 채, 그렇게 학교에서 모든 시간을 보내왔다.

당시 유일한 낙(?)이 있었다면, 교육환경이 열악한 지방학생들을 위해 정부에서 야심차게 추진했던 'EBS 위성방송' 시청이었다. 어느날 교실에 커다란 TV가 설치되더니, 우린 야간자율학습시간만 되면, 서울의 유명한 선생님들의 특강을 학교에서 매번 시청하였던 것이다.

고 2 수학여행 시절..

고 2 수학여행 시절..


담임쌤 얘기하려다가 서론이 길었구만 ㅡ,.ㅡ
암턴 고등학교 2학년이 될 무렵.. 난 문과로 진학을 했고, 그때부터 2년간 일명 '광마'라고 불리우던 담임선생님을 만나며 끔찍한 입시생활을 시작했다. 누구에게나 고3 시절은 기억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특히 상당히 얘민할 시기에, 왠만하면 담임선생님을 좋아할 수가 없는 게 우리나라 입시교육의 현실이 아닐까한다.

심심하면 매를 맞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감시할 뿐더러, 온갖 인신공격과 함께 매일같이 얼굴을 맞대며 생활하다보니 그냥 모든 게 싫었던 것 같다.(지금의 와이프랑도 그렇게 2년 간을 한 장소에서 지내본 경험은 없었을 것이다)

이미 거쳐간 선배들을 통해서도 익히 알려진 우리 담임쌤은, 당신의 혈기를 앞세우시면서 우리를 젓가락 휘어잡듯이 그렇게 대하셨다.

졸업과 동시에 2년을 동고동락한 우리 반 친구들은 한결같이 담임쌤과의 기억을 잊으려했고, 대학에 입학하면서 그 어떤 고마움의 표시보다는 그저 멀리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하물며, 매년 명절 때나 가끔 녀석들을 만날 때면, 역시나 악몽같은 고 3시절을 얘기하며, 담임쌤은 그저 씹어대는 안주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 같다.

수능끝나고, 친구들과 콘도에서 찰칵

수능끝나고, 친구들과 콘도에서 찰칵

그런데..
군대를 전역하고..대학을 졸업하고..사회에 진출하고..결혼을 하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내 인생의 최악으로 기억될 고 3시절이 점점 추억으로 다가오고, 가끔 담임선생님의 안부가 궁금해지고, 급기야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나이가 들면서인지, 선생님의 거침없는 행동들이 그립기도 했고, 당시에 우리를 그렇게 잡아주셨던 게 고의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부인하고 싶지가 않았다.

단지 고 3시절을 싸잡아 비난하면서 당시를 잊으려 했을 뿐, 선생님은 어떤 악의도 없이 우리를 2년 동난 진심으로 대해주셨던 것만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이제야 알겠니?
그렇다.. 난 어제 십수년 만에 처음으로 담임선생님과 유선으로나마 안부를 묻게 되었다.
 

모두가 잊고 있던 선생님을..이제는 머리가 굵어졌는지, 친구녀석들이 찾기 시작했고, 경기도 파주에서 아직도 교편을 잡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던 것이다..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정중히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은 약주를 한 잔 하셨는지, "허, 허" 웃으시면서, 너무나 기뻐하셨다. 그러면서, '이제 너희들이 나를 찾아주는구나', '왜 내가 그랬는지 이해해줘서 고맙다'는 등, 언젠가 우리들을 다시 만나실 그날을 기다리셨다고 했다.

그렇다.. 선생님 또한, 당시 의욕이 앞선 채, 시골학교에서 일 좀 내보시고자, 엄청난 의욕으로 우리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렇게 다스리셨다고 한다. 그리곤 우리의 졸업과 함께 저 멀리 타지로 전근을 가셨다. 그마음.. 난들 몰랐겠냐만, 우린 그냥 그 당시를 통째로 잊고 싶었었기에, 선생님을 잊고 살았다.

저 결혼했습니다.
당시에, 나의 가정사를 뻔히 꽤뚫어보셨던 선생님이셨지만, 지금도 또렷히 기억하고 계신 것이 분명했다. 어머니가 참 기특해하셨겠다며, 말씀을 주셨는데, 마치 잊었던 가족을 만난 것처럼, 가슴이 찡(?)한 것은 무얼까.. 이제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선생님은 인생의 선배이자, 편하게 함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나도 모르게 생겼기에 이렇게 편하게 통화한 건 아닐까 싶다. 그저 3년전, 제자의 결혼식장에 차마 초대를 하지 못했던 게 후회막심할 뿐이었다.

서른이 되어..
이제 얼마 뒤면, 선생님은 우리 동기의 결혼식 주례를 보신다. 벌써부터 당시의 실장녀석이 친구들에게 연락을 다 돌렸고, 그날 선생님과 대면할 것 같다. 그냥 나도 모르게 설레인다. 지금 당장, 경기도 파주로 찾아갈 수도 있지만, 너무 오버하는 것이고, 아마도 그날 우린 처음으로 소주 잔을 기울지 않을까 싶다.

참 할 말도 많은데, 그냥 선생님을 뵙는 것만으로도 지금 상태에선 행복할 것 같다. 그래서, 그날이 더욱 기다려진다..

Posted by 언어의 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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